아라키 마타에몬(荒木又右衛門, あらき またえもん)은 일본 에도 시대 초기에 활동한 사무라이이자 검객으로, 출생 연도는 1598년 또는 1599년으로 전해지며 사망 연도는 1638년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일부 자료에서는 출생을 1594년으로 보는 설도 존재한다.
아라키 마타에몬은 이가(伊賀) 지역의 핫토리 히라사에몬(服部平左衛門)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이후 친척인 핫토리 히라베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성씨는 처음에는 핫토리에서 시작하여 이후 키쿠야마(菊山), 다시 아라키(荒木)로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야규 신카게류(柳生新陰流) 검술을 야규 무네노리에게 배웠으며, 야규 주베의 허가를 받아 야규 싱간류(柳生心眼流)라는 고류 무예를 창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을 일본 역사에 널리 알린 사건은 '이가 고에의 복수'(伊賀越え의 仇討ち) 또는 '카기야의 길목 결투'(鍵屋の辻の決闘)로 불리는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마타에몬의 처남인 와타나베 카즈마의 동생 겐다유가 가와이 마타고로에게 살해당했고, 마타고로는 다른 영지로 도주했다. 카즈마는 복수를 결심하고 마타에몬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마타에몬은 이를 수락하여 대화군산 번의 검술 사범직에서 물러나 복수에 합류했다.
1634년 11월, 마타에몬과 카즈마 일행은 이가우에노의 카기야 교차로에서 마타고로 일행을 기습했다. 이 결투에서 마타에몬은 마타고로의 숙부인 가와이 진자에몬을 비롯한 동행자들을 처치했고, 카즈마가 마타고로와의 일대일 결투에서 오랜 시간에 걸친 접전 끝에 마타고로를 쓰러뜨려 복수를 완수했다. 이후 이 사건은 마타에몬이 36명을 베었다는 이야기로 과장되어 전해지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학계에서는 평가한다.
이 사건 이후 마타에몬은 토도 가문의 보호를 받았으며, 이후 돗토리 번주 이케다 미츠나카의 초청으로 돗토리로 이주했다. 그러나 1638년 8월, 돗토리 도착 직후 급사했다. 사인에 대해서는 독살설 등 여러 설이 제기되었으나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자료에서는 실제로는 1643년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그의 삶과 업적은 일본의 대중문화, 특히 시대극 드라마와 영화에서 여러 차례 다루어진 바 있으며, 일본 전국시대 말기와 에도 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검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