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이 칸(Adai Khan, 몽골어: ᠠᠳᠠᠶ ᠬᠠᠭᠠᠨ, 1390년~1438년)은 몽골 제국의 제26대 대칸이자 북원 시기의 통치자이다. 성은 보르지긴(Боржигин)이며, 칸호는 부얀 세첸 칸으로도 알려져 있다. 재위 기간은 1425년부터 1438년까지로 기록되나, 일부 사료에서는 1434년 원나라 전국옥새를 상실한 시점을 실질적인 재위 종료로 보기도 한다.
출신과 즉위 배경
아다이 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다. 몽골의 역사서 《에르덴 톱치》(Erdeni Tobchi)에 따르면 그는 코르친(Khorchin)부 출신으로, 코르친부는 칭기즈 칸의 동생인 카사르(Khasar)의 후예가 다스리던 부족이었다. 이로 인해 아다이 칸은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통성이 부족한 군주로 평가된다.
1425년, 동몽골 아수드부의 실력자 아룩타이(Arughtai)가 오이라다이 칸(Oiradai Khan)을 살해하고, 원나라 전국옥새를 획득한 뒤 아다이를 새로운 칸으로 옹립하였다. 아다이 칸은 나이만 차강 게르(Naiman Chaghan Ger, 여덟 개의 흰 게르) 앞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통치 기간
즉위 직후 아다이 칸과 아룩타이는 오이라트(Oirat) 부족에 대한 원정을 감행하여 잘라만 산에서 오이라트군을 크게 물리치고 그 수장 바흐무(Bahmu)를 사로잡았다. 아룩타이는 바흐무를 노예로 부리며 그를 토곤(Toghon)이라 불렀다. 아다이 칸은 토곤의 어머니인 사무르 공주(Samur公主, 니굴세그치 칸의 딸)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사무르 공주의 간청으로 토곤을 오이라트 땅으로 돌려보냈다.
석방된 토곤은 이 일을 치욕으로 여기고 복수를 위해 몽골을 끊임없이 공격하였다. 1431년 아다이 칸과 아룩타이는 토곤에게 크게 패하여 요동 지역으로 도망갔으며, 올량합 3위(烏梁海三衛) 및 훌룬( Hulun)과 연합하여 재기를 노렸으나 오이라트와 명나라의 견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몰락과 최후
1434년, 아다이 칸과 아룩타이는 토곤에게 다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고, 이 전투에서 아룩타이가 전사하였다. 토곤은 아다이 칸으로부터 원나라 전국옥새를 빼앗고 톡토부카(Toghtoa Bukha, 후일 타이순 칸)를 새로운 칸으로 세웠다.
이후 아다이 칸은 도르지벡 등 소수의 추종자만을 데리고 명나라의 서북 변방으로 이동하였으며, 생존을 위해 양주(涼州) 등지를 약탈하였다. 이로 인해 명나라의 주시 대상이 되었고, 1435년 감숙총병관 진무(陳懋)에게 패배한 후 영하(寧夏) 근처로 이동하였다. 1437년 명 정통제(正統帝)는 대규모 토벌군을 파견하였고, 1438년 4월 명군에게 쫓긴 아다이 칸은 사주위(沙州衛)로 도망쳐 약탈을 벌이다가 토곤에게 붙잡혀 살해되었다. 1438년 9월, 토곤이 명나라에 아다이 칸의 사망을 통보하였다.
사후 평가
아다이 칸의 사망으로 몽골 초원에서 오이라트에 대항할 세력은 사실상 소멸되었으며, 이후 오이라트의 토곤과 그의 아들 에센(Esen)이 몽골 제국의 실질적 지배자로 부상하였다. 아다이 칸은 칭기즈 칸의 직계가 아닌 혈통에서 즉위하여 짧은 기간 동안 동·중부 몽골을 통일하였으나, 오이라트의 반격과 명나라의 견제 속에서 끝내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몰락한 군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