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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 샵신

아나톨리 이바노비치 샵신(러시아어: Анатолий Иванович Шабшин, Anatoly Ivanovich Shabshin, 1910년 10월 15일 ~ 1967년 1월 15일)은 소비에트 연방의 군인이자 외교관이다.

생애 및 활동

아나톨리 샵신은 1910년 10월 15일에 출생하였다. 본명은 쿨리코프(Kulikov, Куликов)였으며, 이후 샵신으로 개명하였다. 그의 배우자는 파냐 이삭코브나 샵시나(Фаня Исааковна Шабшина, 1906~1998)로, 소련 총영사관 도서실장을 지냈으며 러시아의 '한국학의 대모'로 불렸다.

샵신은 MGB(소련 국가보안부) 요원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에서 활동하였다. 1940년경 서울(경성)에 개설된 소련총영사관에 부임하여 부영사라는 대외직명을 가지고 근무하였다. 그는 한글을 배워 한국어 대화에 능통해졌으며, 최초의 '러-조 사전'(러시아-조선 사전)을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8.15 광복 전후 시기에 서울의 소련 영사관 부영사로 근무하며 대한민국 내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련 군정청 출범 이후에는 경성과 평양을 왕래하며 미군정하에 있는 남한의 정세를 소련군 사령부에 보고하고, 레베데프의 지시에 따라 남한에서 조선공산당을 조종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하에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총수 박헌영과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한 직후, 소련이 북한 지도자를 물색할 때 소련 극동군 사령부와 NKVD는 김일성을, 샵신의 추천을 받은 외무성 쪽은 박헌영을 각각 추천하였다고 한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지도자로 결정하였고, 이후 박헌영의 이의 제기로 1946년 7월 두 사람을 모두 모스크바로 불러 면접을 보게 하였으나 이는 요식 행위에 가까웠다고 전해진다.

서울 소련 영사관 폐쇄 이후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계기로 1946년 7월 2일 서울의 소련 영사관이 폐쇄되면서 샵신도 서울을 떠났다. 이후 그는 평양으로 이동하여 북한 주재 소련군 사령부 정치위원이 되었으며, 미소공위 소련대표단의 일원이자 소련군사령부 정치고문 발라사노프의 부관으로 활동하였다.

샵신은 1967년 1월 15일 사망하였다.

참고 자료

위키백과 및 동아일보(1995.10.31), 중앙일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등 다수의 자료에 등재된 역사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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