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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자수

쑹자수(宋嘉樹, 1863년~1918년)는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에 활동한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다. 영어 이름은 찰리 쑹(Charlie Soong) 또는 찰스 존스 쑹(Charles Jones Soong)이며, 자(字)는 요여(耀如)이다. 중국 근대사의 주요 인물인 쑹아이링, 쑹칭링, 쑹메이링(쑹 자매)과 쑹쯔원(T. V. Soong)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

쑹자수는 1863년 2월 17일(일부 자료에 따르면 1864년) 청나라 광둥성 원창현(현재 중화인민공화국 하이난성 원창시)에서 빈농 한홍익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한자오준(韓敎準)이며, 12세 때인 1875년에 자녀가 없던 외가로 입양되어 쑹(宋)씨 성을 가지게 되었다.

입양 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 보내져 가게 일을 하였으나, 신식교육을 받고자 1877년에 가출하여 미국 국세청 소속 선박 앨버트 갤러틴 호에 밀항하였다. 선장 에릭 가브리엘슨에게 발견된 후 선원으로 고용되었고, '찰스 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주로 이동하여 1880년 11월 7일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1881년 트리니티 칼리지(현 듀크 대학교)에 입학하여 3년 후 졸업하였으며, 이후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는 기록도 있다. 1886년 미국 감리교 교단이 중국에 파견한 최초의 중국인 선교사로서 상하이로 귀국하였다.

1887년 예계진(倪桂珍)과 결혼하였다. 예계진은 명말의 과학자 서광계(徐光啓)의 후손으로 알려진 기독교 명문가 출신이었다. 쑹자수는 선교 활동과 함께 인쇄업, 성경 판매, 밀가루 공장, 미국 기계 수입 대리점 등 다양한 사업을 벌여 상하이의 대표적인 부유한 실업가로 성장하였다.

1892년 광저우에서 쑨원(孫文)을 만나 혁명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후 쑨원의 혁명 사업에 재정적 후원과 조직적 지원을 제공하였다. 쑨원의 불온 출판물을 인쇄·배포하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하였으며, 1913년 계축전쟁(제2차 혁명) 실패 후에는 쑨원과 함께 일본 도쿄로 망명하기도 하였다.

가족 관계

쑹자수와 예계진 사이에서는 3남 3녀가 태어났다. 장녀 쑹아이링(宋靄齡)은 산서성 출신의 사업가 쿵샹시(孔祥熙)와 결혼하였고, 차녀 쑹칭링(宋慶齡)은 쑨원과 결혼하였으며, 삼녀 쑹메이링(宋美齡)은 장제스(蔣介石)와 결혼하였다. 장남 쑹쯔원(宋子文)은 중화민국 재정부장과 행정원장을 역임하였다. 이들 가문은 20세기 전반 중국 정치·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쑹씨 왕조(宋家王朝)'로 불리기도 하였다.

쑹자수는 자녀 교육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 3남 3녀를 모두 미국 명문 대학에 유학 보냈다. 자녀들에게 "뭐든 읽고 생각나는 것은 무조건 써라"는 교육 방침을 적용하였으며, 자녀들의 글을 모아 아동신문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사망

1918년 5월 3일(또는 5월 4일), 위암으로 상하이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55세였다. 사망 당시 둘째 딸 쑹칭링과 쑨원의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었으나, 임종 직전 딸을 용서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후

문화대혁명 시기인 1960년대 후반, 장칭(江靑)의 지시로 쑹자수의 무덤이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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