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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충겸

심충겸(沈忠謙, 1545년~1594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외척으로,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공직(公直), 호는 사양당(四養堂)이다. 봉군호는 청림군(靑林君),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동생이며, 서인의 영수였던 심의겸(沈義謙)의 아우이다.

1545년 심강(沈鋼)의 아들로 태어났다. 1572년(선조 5년) 춘당대시(春塘臺試)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호조좌랑,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홍문관수찬, 성균관직강, 예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575년, 형 심의겸에 의해 이조정랑으로 추천되었으나, 앞서 심의겸의 반대로 이조정랑에 오르지 못했던 김효원(金孝元)이 "전랑은 외척의 사유물이 아니다"라며 반대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사림이 심의겸을 영수로 하는 서인(西人)과 김효원을 영수로 하는 동인(東人)으로 나뉘는 동서분당(東西分黨)이 발생하였다. 심충겸 자신이 직접 당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이조정랑 임명 문제가 조선 붕당 정치의 출발점이 된 중요한 계기로 평가된다.

이후 사헌부지평, 홍문관교리, 사간원헌납, 성균관사예, 호조참의, 병조참지, 사간원대사간, 형조참의, 형조참판, 홍문관부제학, 황해도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병조참판 겸 비변사제조로서 선조를 평양으로 호종하였다. 이후 세자 광해군의 분조(分朝)에 참여하여 병조참판 겸 호조참판으로 군량미 조달에 기여하였다. 평양에서 함경도로 피난하던 중 이항복(李恒福)의 의견을 받아들여 선조에게 의주로 가 명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자고 진언하였고, 이 결단으로 선조의 어가가 의주로 향할 수 있었다. 1594년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같은 해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나이는 50세였다.

사후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청림군에 추봉되었으며, 의정부좌찬성 겸 홍문관·예문관 양관대제학에 추증되었다. 광해군 때 위성공신 1등에 책록되고 청림부원군으로 진봉되었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위성공신은 삭탈되었다.

저서로는 『사양당집(四養堂集)』이 있으며, 글씨에 능하고 시문에 뛰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에 있으며, 양평군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되었다. 묘역 남동쪽에는 심충겸을 제향하는 충익사(忠翼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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