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식
신형식(申泂植, 1926년 10월 9일 ~ 1991년 12월 8일)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제12대 건설부 장관과 제6·8·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195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62년 교육영화공사 회장을 지냈고,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고흥 지역구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4년에는 민정당 윤보선 대표최고위원의 정책기조 연설을 의회에서 비판하고 징계동의안을 제출하였으며, 1965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만류에도 특혜금융 책임을 물어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초선 의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1969년 국정교과서주식회사 사장을 역임하였고,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차 당선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되자 의원직을 상실하였으나, 10·17선언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히고 유신 체제를 "새로운 역사의 시발점"으로 평가한 바 있다. 이후 민주공화당 대변인, 재무위원장, 제1무임소장관(정책연구실장 겸직) 등을 역임하였다. 1975년 제1무임소장관 재임 중에는 수도권 인구 분산책을 입안·기획하였다.
1976년 12월 4일 개각을 통해 제12대 건설부 장관에 임명되어 1978년 12월 22일까지 재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자 장관직에서 물러났고, 1979년 2월 민주공화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79년 10·26사건 이후 12월 사무총장직을 내놓았으며, 1980년 7월 사회정화사업에 따라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8월 19일 의원직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이후 정치활동 금지 조치에 묶여 있다가 1984년 2월 해금되었고, 같은 해 4월 국민당에 입당하였으나 이후 정계를 떠나 해태그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91년 12월 8일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동명이인으로 신형식(申亨植, 1960년 8월 6일 ~ )이라는 정치인·외교관이 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경기대학교 정치학 석·박사를 졸업하였으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소장, 아시아민주주의네트워크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과거 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 등에서 활동하였고, 2025년 10월부터 제14대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로 재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