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 노씨(新昌盧氏)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교하 노씨(交河盧氏)에서 분적(分籍)하여 형성된 가문으로, 고려 시대에 무공을 세워 관직에 오른 인물을 시조로 삼는다.
본관 연혁
신창(新昌)은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에 해당하는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굴직현(屈直縣)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기량현(祁梁縣)으로 개칭되어 온정군(溫井郡, 온양)에 속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신창현(新昌縣)으로 개칭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행정 구역의 변천을 거쳐 1917년 아산군 신창면이 되었으며, 1995년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이 되었다.
시조와 분적
신창 노씨는 교하 노씨 일세조 노강필(盧康弼)의 후손에서 나왔다. 시조에 대해서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위키백과 등 일부 자료는 검교장군(檢校將軍)으로 공을 세워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오르고 신창군(新昌君)에 봉해진 노정(盧挺)을 시조로 제시한다. 반면 뿌리를 찾아서(rootsinfo) 등 다른 자료는 같은 관직과 봉호를 받은 노지유(盧智儒)를 시조로 기록하고 있어, 출처에 따라 시조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다.
두 자료 모두 공통적으로 시조가 교하 노씨 노강필의 증손자이며, 고려 공민왕 때 검교장군으로 무공을 세워 판도판서에 오르고 신창군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후손들이 교하 노씨에서 분관하여 신창을 본관으로 삼았다는 점은 일치한다.
인물
기록상 주요 인물로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전한다.
- 노후(盧珝): 고려 시대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 노순(盧純):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 노순(盧錞):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 남명 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와 함께 의병 활동을 하였다.
- 노집(盧輯): 단성현감을 지내며 청렴한 정치를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인구
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신창 노씨의 인구는 1985년 474가구 1,979명, 2000년 528가구 1,708명, 2015년 2,152명으로 집계되었다. 위키백과에는 2000년 기준 1,026명으로 기록되어 있어 자료 간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소규모 성씨에 속한다.
세거지
주요 세거지로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본향), 대전광역시 일대(유성구 문지동 등),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미동리,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등이 알려져 있다.
참고 사항
- 시조의 이름(노정과 노지유)에 대해 출처 간 차이가 있으나, 공통 서술은 교하 노씨에서 분관한 가문이라는 점이다.
- 문화재로 지정된 문중 유산은 현재까지 별도로 확인되지 않았다.
- 본 항목은 위키백과, 뿌리를 찾아서 등 공개 자료를 종합하여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