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군(神義軍)은 고려 후기 최씨무신정권 시기에 조직된 군사 조직으로, 삼별초(三別抄)의 구성 부대 중 하나이다.
개요
신의군은 고려 고종 대, 몽골(당시 '몽고')과의 전쟁 과정에서 몽골군에게 포로로 잡혀갔다가 탈주하여 돌아온 고려인들을 중심으로 편성된 부대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최우(崔瑀)가 도적을 막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가 이후 좌별초·우별초로 나뉘었고, 몽골에서 도망쳐 온 고려인들을 별도의 부대로 조직하여 '신의군'이라는 명칭을 붙였으며, 이들을 통틀어 삼별초라 부르게 되었다. 《상서도관첩》에서는 '신의군별초(神義軍別抄)'로도 기재되어 있다.
설치 시기
신의군의 정확한 설치 연대는 학계에서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체로 최항(崔沆)의 집정기인 1250년대로 추정된다. 1257년(고종 44) 최항이 사망했을 당시 문객들이 야별초·신의군 및 서방·도방을 집합시켜 밤낮으로 지키게 하고 상(喪)을 발표했다는 기록이 신의군에 대한 최초의 문헌상 등장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몽골 침입으로 대규모 포로가 발생한 고종 41년(1254년)에 그 아이디어가 제기되고, 이듬해인 1255년에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본다.
역할과 성격
신의군은 몽골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고 민족의식이 높은 군대였기 때문에, 몽골군 침입 시 전선에 동원되어 큰 전과를 올렸으며 강도(江都, 현재의 강화도)의 수비를담당하였다. 야별초에 비해 무인집정과의 연관성이 느슨하고 왕정복고의 대의명분에 호응하여 국왕과 연계될 수 있는 부대였다는 평가가 있다.
신의군은 무신정권 내부의 주요 정변에도 관여하였다. 신의군 도령낭장 박희실(朴希實)이 김준과 함께 최의(崔竩)를 제거하는 데 가담하였고, 신의군 장군 송분(宋玢)이 원종의 명령으로 최후의 무인집정 임유무(林惟茂)를 제거하여 고려 무신정권의 종식을 앞당기는 역할을 하였다.
폐지
신의군은 최씨무신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김준·임연·임유무 정권 시기에 존속하다가, 1270년(원종 11) 삼별초와 함께 혁파되었다. 이후 삼별초 항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그 일부 병력은 대몽항쟁에 참여하였다.
의의
신의군을 포함한 삼별초는 당시 고려의 가장 강력한 전투 병력이었으며, 형식적으로만 존속하던 2군6위의 중앙군과 달리 실질적인 대몽 전투력을 보유한 부대였다. 따라서 신의군은 반관반사(半官半私)의 군대로 평가되며, 고려 후기 대몽항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의군」
- 강재광, 「1250~1270년대 신의군의 대몽항전과 정치활동」, 『한국중세사연구』 23, 2007
- 윤용혁, 『삼별초 - 무인정권·몽골, 그리고 바다로의 역사』, 도서출판 혜안,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