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경(辛義敬, 辛義卿, Shin Eui-kyung) 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인이다. 1898년 2월 21일(또는 3월 23일) 서울 경성부 과목동에서 출생하였으며, 1988년 1월 7일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신마리아(신정우)이며, 본관과 부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생애 및 교육 정신여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문과(영문학 전공)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호쿠대학(東北大學) 문과에서 역사학을 공부하였으며, 당시 이 대학의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대학 재학 중 미래의 배우자인 지질학자 박동길(1897~1983)을 만나 1931년 결혼하였다. 귀국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원으로 부임하여 일본사·동양사·서양사 등을 가르쳤다.
독립운동 활동 1919년 정신여학교 교사로 재직 중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동년 9월 김마리아·황애시덕 등이 결사부와 적십자부를 신설할 때 서기 겸 경기도지부장을 맡았다.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 등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 임시정부에 6,000원을 송금하는 데 기여하였다. 1919년 11월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으며, 1921년 9월 18일 만기 출옥하였다. 모친 신마리아는 그가 수감 중이던 1921년 6월 24일 사망하였다.
출옥 이후 활동 1922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창설에 참여하여 서기로 활동하였다. 일제 말기에는 신사참배와 황국신민서사 등 일제 협력 행위를 거부하고 모든 공직 활동에서 물러나 은둔 생활을 하였다.
정치 활동 광복 후 미군정이 1946년 12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을 발족시키자, 여성의원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여성들은 선거권이 없었으나, 군정장관 존 하지가 4명의 여성을 임명하였으며 신의경이 그중 한 명이었다. 과도입법의원에서 황신덕과 함께 여성할당제(특별취급안) 실시를 주장하였으며, 공창제도 폐지령 통과에 기여하였다. 김규식의 정치노선을 지지하였고, 1947년 대한적십자사 창립위원 및 집행위원, 민족자주연맹 부녀국장으로 활동하였다.
교육 활동 및 후반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피어선성경학교, 정신여자중고등학교, 서울여자대학 등에서 교육 활동과 이사직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여전도회 활동에 주력하였다.
상훈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준) 또는 건국훈장 애국장(위키백과 기준)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