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신여자(新女子)는 개항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신식 근대 교육을 받은 여성을 가리키던 용어로, '신여성'(新女性)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신여성을 "개항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정의하면서 "신여자라고도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어원 및 용어의 등장
'신여자' 또는 '신여성'이라는 용어가 언제, 누구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일제강점기 초부터 널리 통용되었으며, 특히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용어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일본에서는 1910년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가 '새로운 여성'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뒤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는 동경유학을 다녀온 선두주자들이 1920년을 전후하여 신여성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신여성론 사이에는 약 10년의 시차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의미와 사회적 배경
'신여자'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따르던 '구여성'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신식 학교교육을 받고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추구한 여성들을 지칭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국 빅토리아 후기 시대에 처음 나타나 이후 여러 사회에서 등장한 세계적 현상이었다. 각 사회에서 신여성은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을 받은 초기 세대로, 경제적 독립을 추구하고 기존의 결혼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자신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을 보였다.
한국에서 신여자가 등장한 직접적인 역사적 배경은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전개된 여성교육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 선교사들과 애국계몽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된 여성교육운동을 통해 여성들은 비로소 전통적 성별 역할의 한계와 여성의 사회진출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신여자』 잡지
'신여자'는 또한 1920년에 신여자사에서 창간된 여성 교양 잡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여자』는 최초로 여성이 만든 여성잡지로, 당시 대표적인 신여성인 김원주(김일엽)가 편집주간을 맡았고 나혜석, 김활란, 박인덕 등이 참여하였다. 이 잡지는 1920년 3월부터 6월까지 월간지로 발간되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것은 4호 한 권뿐이다. 『신여자』는 봉건적 여성 억압과 가부장제 인습의 타파, 자유연애, 자유결혼, 여성의 해방과 사회의식에 대한 당시 신여성들의 입장을 드러낸 자료로 평가된다.
주요 인물과 평가
김원주(김일엽), 김명순, 나혜석 등은 한국 신여자의 상징적 존재로 부각되었다. 이들은 '신여자 선언' 등을 통해 종래의 여성들이 남성의 부당한 억압 아래 노예적 지위에 있었음을 논하고, 남녀평등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남녀관계 수립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전통에 대체될 새로운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지 못했고, 무절제한 사생활 등에 대한 세인의 비난을 받으며 점차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간 측면도 있다.
참고 문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여성' 항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여자' 항목
- 위키백과, '신여성' 항목
- 김수진, 『신여성, 근대의 과잉 1920-1934』(소명출판, 2009)
- 최혜실,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생각의 나무,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