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申奭鎬)는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다. 1904년 3월 8일(음력 1월 22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출생하였으며, 1981년 2월 13일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사망하였다. 본관은 아주(鵝州)이고, 호는 치암(痴菴)이다.
경성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후, 1930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와 수사관으로 근무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국사관장(1946~1949)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1949~1965)을 역임하였으며, 고려대학교에서 20년간 교수로 재직하다 1966년 정년퇴임하였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문리대학장(1966~1970)과 영남대학교 대학원장(1971~1974)을 지냈다. 또한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 한국사연구회 회장, 문교부 편수심의연구위원(1965)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방 후 일제가 폐기하려던 주한 일본공사관 기록 유리원판을 소각 직전에 구출하여 일제의 침략상을 규명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자료를 토대로 해방 후 한국사 연구기관의 모태가 된 국사관(현 국사편찬위원회)을 창설하였다. 1947년 한국산악회의 독도 학술 조사에 참가하였고, 1948년 역사잡지 《사해》에 한국의 독도 영유권 역사를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이후 독도 연구와 한국의 독도 인식 및 정책의 기본 틀을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5년 고려대학교 교내 단체인 일제잔재청산위원회가 발표한 '고려대 100년 속의 일제잔재 1차 인물' 10인 명단에 포함된 이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