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신상철 (1924년)

신상철(申尙澈, 1924년 7월 9일 ~ 2005년 9월 18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 외교관, 정치인이다. 본관은 평산이며, 종교는 천주교로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다.

생애

1924년 충청남도 공주군에서 출생하였다. 1942년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43년 일본 육군예과사관학교 예과를 마치고, 1945년 일본 육군항공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1945년 5월에 임관하여 약 3개월 동안 일본군 항공대 소위로 남만 지역 비행장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다가 태평양 전쟁 종전을 맞아 귀국하였다.

군 경력

귀국 후 미군정 하에서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에 참여하여 육군사관학교를 2기로 졸업하였다. 1948년 24세의 나이로 육군 군기감(현 헌병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여수·순천사건 발생 당시 육군 헌병사령관으로 사건 처리를 담당하였다. 이후 남조선로동당 계열 장교를 숙청하는 숙군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새벽, 육군본부 주번 총사령으로 북한의 남침을 최초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해 10월 제7사단장으로서 백선엽 장군의 제1사단과 함께 평양을 점령해 시가행진을 벌였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육군에서 공군으로 자리를 옮겨 공군본부 작전국장을 지냈으며, 1953년에는 공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1959년부터는 공군본부 참모부 부장을 역임하였고,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국방부 정훈국장으로 임명되었다. 1962년에는 군사정전위원회 한국군 수석대표로 참여하였다.

외교 및 정치 경력

1962년 공군 소장으로 예편한 후, 같은 해 10월 월남(베트남) 주재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되었다. 1970년 12월 사임할 때까지 국군의 베트남 파병 지원과 통상 및 문화항공협정 체결 등의 외교적 성과를 달성하였다. 특히 1968년 베트콩의 구정공세 당시 대한민국 대사관 경비 병력을 진두지휘한 일화로도 알려져 있다.

1970년 12월부터 1973년 12월까지 제23대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였으며, 1972년 10월 유신 당시 비상국무회의에 참여하였다. 체신부 장관 재직 중 장거리 전화 자동화, 공중전화 증설, 백색 전화제 신설 등 국내 통신 인프라 확충에 기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1974년 스페인 대사를 거쳐 1979년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말년에는 자유민주연합 고문직과 대한민국 헌정회 고문직을 맡았다.

상훈

을지무공훈장, 수교훈장 광화장, 미국 리전 오브 메리트(Legion of Merit), 청조근정훈장, 수교훈장 흥인장 등을 수상하였다.

2005년 9월 18일 사망하였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