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 염씨(愼妃 廉氏, 생몰년 미상) 는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恭愍王)의 제5비로, 본관은 서원(瑞原)이며 파주 염씨(坡州廉氏) 계열의 인물이다. 이는 실존 역사 인물로, 《고려사》 열전과 세가 등 공식 사료에 기록이 남아 있다.
가계와 배경
신비 염씨는 고려 말기의 문신인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의 딸이다. 어머니는 진한국대부인(辰韓國大夫人) 안동 권씨이며, 외조부는 예천부원군 권한공(權漢功)이다. 증조부는 흥법좌리공신 염승익(廉承益)이다. 《고려사》에는 신비 염씨가 서원현(瑞原縣)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비 책봉과 생애
1371년(공민왕 20년) 음력 11월에 염씨가 신비(愼妃)로 책봉되었다. 신비(愼妃)는 고려 후기 왕비의 한 작호로, 공민왕이 여러 왕비를 둔 가운데 그중 하나였다.
1372년(공민왕 21년), 공민왕은 후계자를 얻기 위해 젊은 남자들로 구성된 자제위(子弟衛)의 홍륜(洪倫)·한안(韓安) 등을 시켜 자신의 후비(后妃)들을 강제로 동침하게 하였다. 이는 다른 남성의 아이를 임신시키면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는 의도였다. 이때 익비 한씨(益妃 韓氏) 등은 거부하지 못하고 실제로 임신하였으나, 신비 염씨는 혜비 이씨(惠妃 李氏), 정비 안씨(定妃 安氏)와 함께 이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고 따르지 않았다.
1374년(공민왕 23년) 공민왕이 시해된 이후, 신비 염씨는 머리를 깎고 여승(비구니)이 되었다.
사후 기록
공민왕 사후에도 조정에서는 신비 염씨에게 혜비·정비·현비 등과 함께 일용품을 계속 지급하였다. 그러나 1388년(우왕 14년) 음력 12월, 헌사(憲司)에서 이들이 정실 왕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용품 지급을 중단하고 세록(歲祿)만 지급하도록 청하는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비 염씨의 생몰년과 능지(陵地)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공민왕과의 사이에서 소생은 없었다.
주요 사료
- 《고려사》 권43〈세가〉권43: 공민왕 20년 11월, 공민왕 21년 10월 기사
- 《고려사》 권137〈열전〉권50: 창왕 즉위년 12월 헌사 건의 기사
-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에 수록된 염제신 신도비명
대중문화 속 등장
신비 염씨는 KBS 드라마 《개국》(1983년)과 《정도전》(2014년)에 등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