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辛未洋擾)는 1871년(고종 8년) 음력 4월부터 5월까지 조선과 미국 사이에 강화도 일대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 사건이다. 미국 측 명칭은 '1871년 미국 원정대 조선 원정(United States expedition to Korea in 1871)'이다.
배경 1866년(병인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미국 상선이 소각되고 승무원이 살해된 사건 이후, 미국은 진상 조사와 통상 조약 체결을 요구하며 조선에 압력을 가하였다. 1871년 5월, 미국 아시아 함대 사령관 존 로저스(John Rodgers)가 이끄는 함대(군함 5척, 병력 약 1,230명)가 조선 연해에 진입하였다.
경과 미국 함대는 처음에 외교적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조선 측이 통상을 거부하고 국서 수령을 거절하자 군사 행동으로 전환하였다. 4월 23일(양력 6월 1일) 미국 측은 강화도 해안의 초지진, 덕진진, 광성진 등을 차례로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조선군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미군을 상대로 구식 화포와 화약 등으로 저항하였으나 화력 차이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광성진 전투에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이 전사하는 등 조선군 약 350명이 전사하고 미군 3명이 전사하였다.
결과 및 의의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점하였으나, 조선 정부가 끝까지 통상 조약 체결을 거부하고 강화도 조약(병자수호조약) 체결 전까지 쇄국 의지를 굽히지 않자, 미국 함대는 5월 중순 철수하였다. 이 사건은 조선의 쇄국 정책이 국제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되며, 이후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 체결로 이어지는 개항 과정의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