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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릉군

신릉군(信陵君, ?~기원전 243년)은 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왕족이자 정치가·군사가로, 이름은 위무기(魏無忌)이다. 위나라 소왕(昭王)의 막내아들이자 안희왕(安釐王)의 이복동생이다.

안희왕이 즉위한 뒤 신릉(信陵, 지금의 허난성 상추시 닝링현 일대) 지역에 봉해져 '신릉군'이라는 봉호를 받았다. 신릉군은 성품이 인자하고 겸손하여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선비를 존중하였으며, 그의 문하에는 3천여 명의 식객이 모였다고 전해진다.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초(楚)나라의 춘신군(春申君)과 함께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기원전 257년,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신릉군은 위나라 장군 진비(晉鄙)의 병부를 탈취하고 그를 죽인 뒤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를 구원하였다. 이 사건은 《사기(史記)》의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후 조나라에 10년간 머물렀으며,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자 귀국하여 5개국 연합군을 지휘하여 진나라를 격파하였다.

그러나 진나라가 퍼뜨린 모함으로 안희왕의 의심을 받아 상장군 직위를 박탈당하였고, 이후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신릉군은 술과 향락에 빠져 지내다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가 죽은 뒤 18년 만인 기원전 225년에 위나라는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신릉군이 저술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병법서 《위공자병법(魏公子兵法)》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후한의 유방(劉邦)은 미천한 시절부터 신릉군을 앙모하여 대량(大梁)을 지날 때마다 그의 사당에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신릉군은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인재 양성과 의리·지략의 인물로서, 《사기》와 《전국책》 등 중국 고대 사료에 광범위하게 기록되어 있는 실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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