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신경균"(申敬均)은 한국에서 사용되는 인명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인물이 존재한다. 한자 표기와 활동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인물을 지칭하는 경우가 있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일제강점기에서 활동한 영화감독과 현대 도예가가 있다.
1. 영화감독 신경균 (申敬均, 1912~1981)
신경균은 경상북도 선산(현 구미시) 출신의 영화감독이다. 대구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1930년경 일본에 유학하여 영화를 공부했으며, 주로 영화 녹음 분야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1935년 귀국하여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각종 매체에 영화 관련 글을 기고했다.
1937년 함대훈 원작의 《순정해협》을 각색·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였다. 이 작품은 청구영화사의 창립 작품이기도 하였다. 원작의 해피엔딩을 여주인공이 사망하는 비극적 결말로 변경하여 러시아 문학풍의 멜로드라마로 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에 원작자 함대훈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1942년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에 입사하여 《감격의 일기》, 《우리들의 전쟁》, 《피와 땀》 등 친일 성향의 어용 영화를 연출하였다. 이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의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에는 우익 영화인 단체인 영화감독구락부에 가담하는 등 우익 계열 영화인으로 분류되었으며, 1947년 청구영화사를 재설립하여 최은희의 데뷔작인 《새로운 맹서》를 연출하였다. 이 작품은 강제 징용에서 돌아온 청년들이 마을을 재건한다는 내용의 계몽적 주제를 담고 있다.
이후 1970년대까지 활발히 활동하며 《찔레꽃》(1957), 《노들강변》(1957), 《여자의 일생》(1962), 《마도로스 박》(1964) 등 멜로드라마·사극·액션 영화를 두루 연출하였다. 마지막 작품은 박노식 주연의 《홍콩부루스》(1971)이며, 《홍콩서 온 마담장》(1970)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기도 했다. 1981년 4월 21일 사망했다. 아들 신옥현도 영화 촬영기사로 활동했다.
2. 도예가 신경균 (1964~ )
경상남도 진주 출신의 도예가로, 부산공예고등학교 도자기학과를 졸업하고 경성대학교 공예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진주에서 '장안요'를 운영하며 고려청자 등 한국 전통 도자의 현대적 재해석에 주력하고 있다. 전통 도자 기술을 전수받으면서도 전통의 단순한 재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와 연구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친과 아들까지 3대가 도자를 빚는 도자 가족으로도 알려져 있다.
3. 시인 신경균
196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의 시인으로, 2016년 《한맥문학》 신인상(시 부문)으로 등단하였다. 포스코에서 정년퇴임한 후 커뮤니케이션과 안전문화 강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어원 및 용례
"신경균"은 한자로 申(거듭 신), 敬(공경할 경), 均(고를 균)으로 표기되며, 대한민국에서 사람 이름으로 사용되는 고유 명사이다. 특정 단일 개체를 지칭하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복수의 인물을 가리키는 인명이므로, 맥락에 따라 어느 인물을 지칭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