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토네스족(Sitones)은 서기 1세기경 북유럽에 거주했던 고대 게르만족의 하나이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로마의 역사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가 서기 97년경에 저술한 『게르마니아』(Germania) 제45장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된다. 타키투스는 시토네스족이 수이오네스족(Suiones, 현대 스웨덴인의 조상으로 여겨짐)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으며, 언어와 관습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수이오네스족과 유사하나,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 차이점은 시토네스족은 여성이 통치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타키투스는 이에 대해 "따라서 이들은 자유의 상태에서도 퇴폐적일 뿐만 아니라, 속박의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평하였다.
시토네스족의 정확한 위치는 학계에서 확정되지 않았다. 타키투스의 기록을 근거로 스웨덴 중앙 지역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현재의 에스토니아나 핀란드 일대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핀란드 학자 퀴외스티 율쿠(Kyösti Julku, 1986)는 시토네스족의 지리적 위치에 모호함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크벤란드(Kvenland) 지역, 즉 수이오네스족의 북쪽 및 북동쪽 지역에 거주한 크벤(Kven)족의 조상으로 보기도 하였다.
시토네스족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존재한다. 한 이론에 따르면, 이 명칭이 스웨덴의 도시 시그투나(Sigtuna)의 라틴어 표기인 '시투네'(Situne)를 부분적으로 오독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다른 견해로는, 타키투스가 시토네스족의 '여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크벤'(Kven) 또는 '퀘인'(Kvenir)이라는 인명(人名)이 고대 노르드어로 '여성'을 뜻하는 단어와 언어적으로 혼동되어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중세학자 켐프 멀론(Kemp Malone, 1925)은 수이오네스족과 시토네스족에 대한 타키투스의 묘사가 "역사적 연구에 따른 결과물이 아닌, 창조된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멀론에 따르면, 타키투스는 여성에 대한 시토네스족의 복종을, 왕에 대한 수이오네스족의 완전한 복종 및 자신들의 무기를 노예에게 넘겨주는 관행과 연결지어 논리적으로 타락한 상태의 절정을 표현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시토네스족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나 추가적인 역사 기록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들에 관한 정보는 오직 타키투스의 단편적인 기록에만 의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