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온(고대 그리스어: Σικυών, Sicyon)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로,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부에 위치했다. 코린토스와 아카이아 사이, 코린트 만에서 약 2마일(약 3km) 떨어진 낮은 삼각 고원 위에 세워졌으며, 현재의 그리스 코린티아 지역 단위에 해당한다. 도시와 항구 사이에는 올리브나무와 과수원이 있는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역사
시키온은 미케네 문명 시기에 이미 사람이 거주했던 곳으로, 전승에 따르면 이 시기에 26명의 신화적 왕이 통치했으며 이후에는 아폴로 신전의 7명의 성직자가 통치했다고 전해진다. 고고학적·문헌적 기록에 따르면, 이 지역은 도리스족의 세 갈래 부족과 동등한 특권을 가진 이오니아족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토지를 경작하는 계층도 존재했다.
기원전 676년경 시키온은 아르고스의 종주권에서 벗어나 독립했으며, 오르타고라스(Orthagoras) 가문의 참주정이 수립되었다. 이 가문 출신 중 가장 유명한 통치자는 기원전 600년부터 560년까지 통치한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인데, 그는 아테네의 개혁가 클레이스테네스의 외조부이기도 하다. 그는 도시 헌법을 이오니아족에게 유리하게 개혁하고 디오니소스 숭배를 장려했으며, 제1차 신성전쟁에서 델포이의 이익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556년, 그의 후계자 아이스키네스는 스파르타에 의해 축출되었고, 이후 시키온은 한 세기 이상 스파르타의 동맹이 되었다. 이 시기에 시키온은 다양한 산업과 예술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조각과 회화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는데, 회화 예술이 시키온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페르시아 전쟁과 이후의 역사
페르시아 전쟁 시기에 시키온은 살라미스 해전에 15척의 삼단노선(trireme)을 파견하고, 플라타이아 전투에 3,000명의 중장보병을 파견하는 등 참전했다. 델포이의 뱀 기둥(Serpent Column)에 기록된 전승 명단에서 시키온은 스파르타, 아테네, 코린토스, 테게아에 이어 5번째로 이름이 올랐다.
이후 시키온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와 코린토스를 따랐다. 기원전 4세기에는 도시가 절정에 이르렀으며, 에우폼포스(Eupompus)의 회화 학교는 명성을 얻었고, 유명한 화가 팜필루스와 아펠레스 등을 배출했다. 리시포스(Lysippus)와 그의 제자들은 시키온 조각을 그리스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기원전 303년, 데메트리오스 폴리오르케테스가 시키온을 정복하여 평지에 있던 옛 도시를 허물고 아크로폴리스로 이전하고 새로운 성벽을 건설했다. 한때 도시 이름이 '데메트리아스'로 변경되기도 했으나, 결국 원래 이름이 되살아났다.
기원전 251년, 클레이니아스의 아들인 아라토스(Aratus of Sicyon)가 야간 공격으로 도시를 탈환하고 마지막 참주를 축출했다. 그는 민주정을 회복하고 아카이아 동맹에 도시를 가입시켰다. 아라토스는 기원전 213년 사망할 때까지 아카이아 정치의 지도적 인물로 활동했다. 시키온은 기원전 146년 로마가 아카이아 동맹을 해체할 때까지 동맹의 안정적인 민주 도시로 남아 있었다.
고고학 유적
현재 시키온 유적지에서는 아고라, 아폴론 또는 아르테미스 신전, 극장, 팔라이스트라, 체육관, 경기장, 부울레우테리온, 서쪽 및 남쪽 스토아, 로마식 목욕탕 등이 발굴되었다. 고대 시키온 유적은 현재 그리스 바실리코(이후 시키오나로 개명) 마을 서쪽에 위치하며, 현재 '시키온 프로젝트(Sikyon Project)'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인 고고학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기타
시키온은 신화적으로 프로메테우스의 속임수가 벌어진 '메코네(Mecone)'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또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1606)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내 풀비아가 시키온에서 사망한 것으로 언급되며,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소설 《히페리온》(1797)도 "시키온의 낙원 같은 평야"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