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가타케 전투(일본어: 賤ヶ岳の戦い)는 1583년(덴쇼 11년), 일본 오미국(近江国) 이카군(伊香郡) 시즈가타케(賤ヶ岳) 부근(현 시가현 나가하마시)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교전 상대는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후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였다.
배경
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한 후, 기요스 회의에서 후계자 문제를 두고 히데요시와 가쓰이에가 대립하였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적손인 산보시(三法師)를 옹립하였고, 가쓰이에는 노부나가의 삼남 노부타카를 옹립하였다. 이후 양측은 주변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공작을 펼쳤으며, 히데요시는 교토 부교 임명, 노부나가 장례식 대규모 거행 등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전투 경과
1583년 3월, 가쓰이에는 3만의 군세를 이끌고 오미 야나가세에 도착하였고, 히데요시도 5만의 병력을 이끌고 기노모토에 포진하였다. 양측은 초기에는 진지와 요새 구축에 주력하였다.
4월, 오다 노부타카가 다시 거병하자 히데요시가 미노 방면으로 진군한 사이, 가쓰이에의 부장 사쿠마 모리마사(佐久間盛政)가 히데요시 측의 오이와야마 요새(大岩山砦)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그러나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가 2천의 군세를 이끌고 가이즈에 상륙하여 시즈가타케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히데요시는 오가키에서 소식을 접한 후 즉시 군대를 돌려 약 52km를 5시간 만에 주파하는 강행군으로 시즈가타케에 재진입하였다. 전투 중 시바타 측의 마에다 도시이에(前田利家)가 갑자기 전선을 이탈하였고, 이에 히데요시 군이 가쓰이에의 본대를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결과
가쓰이에는 에치젠 기타노조성으로 퇴각하였으나 히데요시 군에 포위되어 부인 오이치노카타(노부나가의 여동생)와 함께 자결하였다. 사쿠마 모리마사는 참수되었고, 오다 노부타카는 할복, 다키가와 가즈마스는 출가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히데요시는 오다 가문의 실질적 계승자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이후 오사카성 축성을 시작하고 조정으로부터 종사위하 산기에 서임되는 등 일본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이 전투에서 공을 세운 후쿠시마 마사노리, 가토 기요마사, 가토 요시아키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히라노 나가야스, 가스야 다케노리, 가타기리 가쓰모토 등 7명은 후세에 '시즈가타케의 칠본창(賤ヶ岳の七本槍)'이라 불리게 되었다. 다만 이들은 승리가 확정된 이후의 추격전에서 공을 세운 것으로, 실제 전투의 핵심 전공은 오타니 요시쓰구, 이시다 미쓰나리 등에게 돌아갔다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