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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라이타니아

시스라이타니아(Cisleithania, 독일어: Cisleithanien)는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아우스글라이히) 이후 성립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오스트리아 측 영역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공식 명칭은 "제국 의회에 대표되는 왕국들과 영토"(독일어: Die im Reichsrat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이며, 수도는 빈(Vienna)이었다.

명칭의 유래

"시스라이타니아"라는 이름은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빈과 부다페스트 사이를 흐르는 다뉴브강의 지류인 라이타강(Leitha)의 "이쪽"(cis-)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빈의 관점에서 라이타강 서쪽(빈 쪽)에 해당하는 영토를 가리킨다. 이에 대비되는 헝가리 측 영역은 라이타강 "건너편"(trans-)이라는 뜻의 트란스라이타니아(Transleithania)로 불렸다. 이 명칭은 비공식적인 통칭으로, 공식 문서에서는 주로 "제국 의회에 대표되는 왕국들과 영토"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영토와 구성

시스라이타니아는 15개의 왕관령(Kronländer)으로 구성되었다. 주요 구성 지역은 다음과 같다.

  • 보헤미아 왕국, 달마티아 왕국,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 오버외스터라이히(상오스트리아) 대공국, 니더외스터라이히(하오스트리아) 대공국
  • 부코비나 공국, 케른텐 공국, 크라인 공국, 잘츠부르크 공국, 실레시아 공국,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 모라비아 변경백국
  • 티롤 백국, 포어아를베르크 백국
  • 트리에스테 자유시 등

이 영토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부르겐란트 제외), 체코, 슬로베니아 대부분, 폴란드 남부, 이탈리아 일부(트리에스테, 트렌티노, 남티롤 등), 크로아티아 일부(이스트리아, 달마티아), 몬테네그로 일부, 루마니아 일부(남부 부코비나), 우크라이나 일부(북부 부코비나와 갈리치아)에 해당한다. 총 면적은 약 30만 km²였다.

정치 체제

시스라이타니아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오스트리아 황제가 통치하였다. 의회는 빈에 소재한 제국 의회(Reichsrat)로, 상원(귀족원)과 하원(대의원)의 양원제로 구성되었다. 1873년부터 하원 의원의 직접 선거가 도입되었고, 1907년 선거 개혁을 통해 남성 보통선거가 시행되었다.

외교, 국방, 공동 재정 문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전체의 공동 사무로 처리되었으며, 양측 의회에서 각각 60명씩 선출된 대표단이 이를 논의하였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1878년 점령 이후 시스라이타니아와 트란스라이타니아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동통치령으로 별도 취급되었다.

인구와 민족 구성

1910년 인구 조사 기준 시스라이타니아의 인구는 약 2,857만 명이었다. 민족 구성은 독일계가 약 33%, 체코계가 약 22%, 폴란드계가 약 15%, 루테니아(우크라이나)계가 약 12%, 슬로베니아계가 약 5%, 이탈리아계가 약 3%, 크로아티아계가 약 3%였다. 슬라브계 민족이 전체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여, 독일어 사용자와 슬라브계 의원들 사이의 민족적 갈등이 정치의 주요 쟁점이었다.

종교적으로는 로마 가톨릭이 약 7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그리스 가톨릭(약 12%), 동방 정교회(약 2.3%), 개신교(약 2%), 유대교(약 4.6%) 등이 뒤를 이었다.

경제

1870년부터 1913년까지 시스라이타니아의 1인당 GDP는 연평균 약 1.01%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같은 기간 헝가리 측(트란스라이타니아)의 성장률(약 1.31%)보다 낮은 수치였다. 화폐는 1867년부터 1892년까지 플로린, 이후 1918년까지 크라운이 사용되었다.

해체

시스라이타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와 함께 소멸하였다. 그 영토는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훗날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루마니아,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이탈리아 등으로 분할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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