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즈 스미코(清水澄子, 1928년 3월 1일 ~ 2013년 1월 14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일본 후쿠이현 출신으로, 일본 사회당과 이후 사회민주당에 소속되어 참의원 의원(2선)을 지냈다.
1944년 마루오카정립 마루오카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카쓰키고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진학했으나, 공습을 피해 후쿠이현으로 귀향하였다. 1951년 후쿠이현 노동조합평의회에서 근무하였고, 1956년 후쿠이현 일하는 여성의 회를 결성하였다. 1962년 일본부인회의(훗날 I여성회의) 발족에 참여하여 후쿠이현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1965년부터 일본사회당 소속 참의원 의원인 다나카 스미코의 비서를 역임하였다. 1967년 일본부인회의 사무국장을 거쳐 의장에 취임하였다.
1989년 제15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일본사회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여 초선하였다. 1994년 사회당 여성·시민국장을 지냈고, 1995년 제17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사회당 비례대표로 재선되었다. 1996년 사회민주당 발족에 따라 부당수에 취임하였다. 2001년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낙선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시미즈 스미코는 1972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일본과 한반도 관계의 여러 분야에서 가교 역할을 수행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한국인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2010년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아 '강제병합 원천적 무효'를 주장하며 일본 총리의 식민지배 사과 담화를 요구하는 '2010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에 서명하였다.
1991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대회는 시미즈 스미코의 오랜 준비 끝에 성사된 남북 여성 교류의 성과로 평가된다. 이 대회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여성이 판문점을 넘어 서울을 방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평양에서 3차 대회, 일본에서 4차 대회가 열렸으나 정치 상황 악화로 더 이상 개최되지 못하였다.
그는 '일북국교정상화를 요구하는 연락회' 공동대표를 지내며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선택적 부부별성제도 도입과 남녀공동참여 확대에도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은퇴 후에는 I여성회의 상임고문, 조선여성과 연대하는 일본부인연락회 대표,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 기념 일본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3년 1월 14일 폐암으로 사망하였으며, 사후 종4위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