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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비젠탈

시몬 비젠탈(Simon Wiesenthal, 1908년 12월 31일 ~ 2005년 9월 20일)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나치 전범 추적자(Nazi hunter)이며 저술가이다. 독일어 표기 '지몬 비젠탈'로도 알려져 있다.

1908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였던 갈리치아 지방의 부차치(현재 우크라이나 테르노필주)에서 유대인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버지가 전사한 후 가족과 함께 빈으로 이주했으며, 이후 프라하의 체코 공과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여러 강제 수용소(야노프스카, 크라쿠프-프와슈프, 그로스-로젠, 부헨발트, 마우트하우젠)에 수감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친척 89명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되었으며, 본인도 여러 차례 사형 직전에서 구조되었다. 1945년 5월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미군에 의해 해방될 당시 그의 몸무게는 41kg에 불과했다.

전쟁 후 비젠탈은 도주한 나치 전범들을 추적하고 법적 심판을 받게 하는 데 생애를 바쳤다. 1947년 오스트리아 린츠에 유대인 역사 문서 센터를 공동 설립하였고, 1961년 빈에 나치 정권 유대인 피해자 협회 문서 센터(Dokumentationszentrum)를 열었다.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체포에 기여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프란츠 슈탕글(Franz Stangl), 헤르미네 브라운슈타이너(Hermine Braunsteiner) 등 다수의 나치 전범을 추적하여 재판에 회부하는 데 역할을 하였다.

다만 일부 역사학자들과 전기 작가들(톰 세게브, 가이 월터스 등)은 비젠탈의 자서전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나 과장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아이히만 체포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과장했다는 비판이 있으며, 그가 제시한 일부 수치와 이야기들은 엄밀한 역사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그의 이름을 딴 시몬 비젠탈 센터(Simon Wiesenthal Center)가 설립되어 홀로코스트 연구와 교육, 반유대주의 척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4년 영국 명예 KBE 훈장을 받았으며, 2005년 9월 2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96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이스라엘 헤르츨리야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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