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령후

시령후(始寧侯, 본명 왕의·왕禕)는 고려 제21대 왕 희종(熙宗)과 성평왕후(成平王后)의 차남으로, 고려 후기의 왕자이자 후작이다. 그의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는 정확히 기록되지 않으며, 생몰 연도는 알 수 없다.

생애

  • 관직·봉신: 1211년(희종 7년) 음력 4월 27일, 검교태위·수사도·상주국 시령후(始寧侯)로 책봉되었다.
  • 유배: 같은 해 희종이 최충헌을 죽이려다 발각되어 폐위·강화 유배당하면서, 시령후 역시 백령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그의 형제·자매들도 각각 다른 섬으로 유배된 기록이 있다.
  • 가족: 아내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아들 왕굉(王宏)의 존재는 확인된다.

가계·친족 관계

  • : 고려 제21대 왕 희종 (1181 ~ 1237)
  • : 성평왕후 (생몰연도 미상, 사망 1247년)
  • 형제
    • 창원공 지(昌原公 祉)
    • 경원공 조(慶原公 祚) 등 여러 형·동생이 있다.
  • 자식
    • 왕굉(王宏) – 구체적인 행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평가

시령후는 고려 왕족 중 하나로, 왕실 내에서 후작 직위를 부여받았으나, 아버지의 정치적 몰락과 함께 유배 생활을 겪은 인물이다. 그의 개인적 업적이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상세한 사료는 부족하여, 역사적 평가가 제한적이다.

참고 문헌

  • 《고려사》 권21·세가·왕자 의를 시령후로 책봉하다
  • 《고려사》 권142·열전·희종 왕자 시령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령후” 항목

※ 본 문서는 기존 사료에 근거한 객관적 기술이며,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