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는 17세기 프랑스의 실존 인물이며, 둘째는 이 인물을 모델로 하여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이 집필한 5막 운문 희곡 및 그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다.
1. 실존 인물 (1619년 ~ 1655년)
정식 이름은 에르퀼 사비니앵 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Hercule Savinien de Cyrano de Bergerac)이다. 프랑스 파리의 법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집안의 영지였던 모비에르와 베르주라크를 오가며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군인의 길로 들어서 1640년 아라스 포위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군을 떠난 후,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인이자 검객, 자유사상가로서 명성을 쌓았다. 아버지 사망 후 물려받은 유산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1655년 머리에 들보가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코가 큰 것에 콤플렉스가 있었으며, 이를 놀린 사람들에게 결투를 신청해 뛰어난 검술로 제압한 일화가 유명하다. 주요 저서로는 풍자 소설 《다른 세계: 달의 제국과 제국의 이야기》(L'Autre Monde: ou les États et Empires de la Lune) 등이 있다.
2. 희곡 (1897년)
에드몽 로스탕이 17세기 실존 인물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생애를 바탕으로 극화한 5막 운문 희곡이다. 1897년 12월 28일 파리의 폴드 상마르탱 극장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공연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코가 유난히 큰 추남 시라노는 아름다운 종매(從妹) 록산(Roxane)을 남몰래 사랑한다. 그러나 록산은 미남자 크리스티앙(Christian)을 사랑한다. 시라노는 두 사람의 사랑을 맺어주기 위해 연문(戀文)을 쓸 줄 모르는 크리스티앙을 대필하여, 그 편지 속에 자신의 진심을 담아 보낸다. 이후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전장에 나가고, 대필 편지는 계속된다. 그러나 록산이 사랑하게 된 것은 크리스티앙의 외모가 아니라 시라노가 써 보낸 편지의 내용이었다. 크리스티앙은 전투에서 전사하고, 인생무상을 느낀 록산은 수녀원에 들어간다. 15년 후, 결투에서 중상을 입은 시라노는 수녀원의 록산을 찾아가고, 그가 읊는 크리스티앙의 마지막 편지 문구를 통해 록산은 비로소 시라노의 진심을 깨닫게 된다.
이 희곡은 청순하고 협기(俠氣) 넘치는 로맨틱한 무대와 대중적 이해도가 높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에서는 1958년 국립극단, 1971년 실험극장 등에서 공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