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僧伽, 산스크리트어: saṃgha, 팔리어: saṅgha)는 불교에서 불교에 귀의한 독신 출가자들이 모여 공동 수행을 하는 집단 또는 그러한 공간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승단(僧團)이라고도 하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교단(敎團)·대중(大衆)·종단(宗團)·종파(宗派) 등의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나, 불교의 출가수행자들의 집단을 대표하는 표현은 승가이다.
어원과 기원
'승가'의 산스크리트어 원어인 '상가(saṃgha)'는 본래 '집단'이나 '무리'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단어였다. 기원전 3세기 아소카(阿育王) 왕 시대부터 불교의 수행자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고대에는 기존의 바라문교와 베다 사상에 대립하던 여러 수행자 집단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상가(saṃgha)' 또는 '가나(gaṇa)'라는 표현으로 불렸다.
불교에서 승가의 성립 시기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부처의 입멸을 기원전 383년(향년 80세)으로 볼 경우, 초전법륜(初轉法輪)이 기원전 428년(35세)에 이루어졌고, 이때 다섯 고행자가 부처에게 귀의하면서 최초의 승가가 탄생한 것으로 보는 학설이 일반적이다. 이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후 바라나시(현 인도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옛 수행 도반 다섯 명에게 사성제(四聖諦)를 설한 초전법륜과 관련된 사건이다.
의미와 성격
불교에서 승가는 붓다(佛陀)·법(法)·승(僧)으로 이루어진 '삼보(三寶)'의 하나이기도 하다. 불법승(佛法僧)의 준말에서 알 수 있듯, 승가는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제자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승가는 바라문교의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며 태어났기에 신분·직업상의 차별을 두지 않고 누구라도 출가를 허용했다. 승가 내에서는 율(律)이라는 공동체의 규율을 준수하며 금욕 생활을 유지하고 공동 수행을 이어갔다. 출가자들은 '삼의일발(三衣一鉢)' 즉 세 종류의 옷(안타회·울타라승·승가리)과 하나의 발우만을 지니고, '사의(四依)'—걸식(탁발)·분소의(낡은 천으로 만든 옷)·수하좌(나무 아래에서 거주)·진기약(최소한의 의약품)—를 생활 원칙으로 삼았다.
승가의 운영과 관련하여, 출가자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부처가 '수범수제(隨犯隨制)'의 방식으로 규율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규율들은 부처의 열반 후 제1결집에서 우파리 존자에 의해 결집되어 '율장(律藏)'이라는 성전으로 편찬되었으며, 이후 승가의 운영 원칙으로 전승되었다. 정식 출가자인 비구·비구니가 될 때 받는 구족계(具足戒) 역시 이 율장에 근거한다.
구성과 변천
초기에는 승가가 정식 출가자로서 비구(남성 승려)·비구니(여성 승려)만을 포함했으며, 이에 따라 비구승가·비구니승가로 구분되었다. 이후 불교 교단이 확대되면서 예비 출가자인 사미(沙彌)·사미니(沙彌尼)·식차마나(式叉摩那)와 불교에 귀의한 재가자가 추가되었고, 승가는 보다 넓은 의미의 불교 교단으로 발전하였다. 불교 교단의 구성원 전체를 통칭할 때 '사부대중(四部大衆)' 또는 '칠중(七衆)'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승가를 인원수로 구분하면 5인 승가, 10인 승가, 20인 승가, 20인 이상의 승가로 나뉘며, 이는 승가의 중요한 결정 회의인 갈마(羯磨)의 형식과 인원에 따른 분류이다.
역사적 의미
승가의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는 부처 생존 당시 발생한 최초의 '파승(破僧)'이 있다. 부처의 제자였던 데바닷타는 더 엄격한 고행 위주의 수행을 주장하며 일부 출가자를 이끌고 별도의 교단을 만들어 승가를 분열시켰다. 이는 승가 내부에서 규율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에도 율장 해석의 차이로 인한 부파분열(部派分裂)이 발생했고, 이는 이후 불교 교단의 다양화로 이어졌다.
승가는 불교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삼보의 일원으로서 불교 수행의 공동체적 기반을 이루는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불교문화포털(동국대학교), Study Buddhism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