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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사 전선

스트레사 전선(영어: Stresa Front, 이탈리아어: Fronte di Stresa)은 1935년 4월 14일 이탈리아 북부 마조레호( Lake Maggiore)의 휴양 도시 스트레사(Stresa)에서 체결된 협정으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왕국 세 나라 간의 삼자 동맹 및 안보 보장 체제를 가리킨다. 공식 명칭은 '스트레사 회의 최종 선언(Final Declaration of the Stresa Conference)'이다.

배경 및 목적

스트레사 전선은 1935년 3월 나치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여 공군을 증강하고 징병제를 실시하며 군 병력을 36개 사단(약 50만 명)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데 대한 대응으로 성립되었다. 이 협정의 주요 목적은 로카르노 조약(1925)을 재확인하고,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안슐루스) 시도를 저지하며,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협정은 오스트리아의 독립 유지를 3국 공동의 방침으로 천명하였다.

회의 진행

회의는 1935년 4월 11일부터 나흘간 스트레사의 보로메오 궁전에서 개최되었다. 참석자는 영국 총리 램지 맥도널드, 프랑스 총리 피에르에티엔 플랑댕과 외무장관 피에르 라발, 이탈리아 총리 베니토 무솔리니였다. 영국 외교관 로버트 밴시타트 경(Sir Robert Vansittart)이 이 회의의 성사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지리적 위치상 오스트리아 방어에 유리했으며, 1934년 7월 나치의 오스트리아 쿠데타 시도 당시 이탈리아-오스트리아 국경에 병력을 파견하여 오스트리아를 방어한 전력이 있었다.

해체 과정

스트레사 전선은 성립 이후 빠르게 와해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다음과 같다.

  1. 영국-독일 해군 조약(1935년 6월): 스트레사 회의 불과 두 달 후, 영국은 나치 독일과 별도의 해군 조약을 체결하여 독일의 해군력 확대를 허가하였다. 이는 스트레사 전선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조치였으며, 무솔리니는 영국이 자신에게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은 점에 격분했다.

  2.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1935년 10월): 무솔리니는 영국-독일 해군 조약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낀 데다, 스트레사 회의에서 아비시니아(에티오피아) 문제가 유럽 문제와 분리되어 논의되었다고 판단하고 에티오피아 침공을 단행하였다. 이로 인해 영국 및 프랑스와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스트레사 전선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3. 이탈리아의 친독일 전환: 1936년 1월 무솔리니는 독일 대사에게 오스트리아 독립이 유지된다면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사실상 위성국으로 삼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같은 해 2월에는 히틀러의 라인란트 재무장에 동의하였다. 이는 이후 독일-이탈리아 추축국(1936년) 형성의 길을 열었다.

의의 및 평가

스트레사 전선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저지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로버트 밴시타트는 이 회의를 "실패작(fiasco)"이라고 평가하며, "이 참사로 우리는 아비시니아를 잃었고, 오스트리아를 잃었고, 추축국을 만들었으며, 다가오는 독일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회고하였다. 스트레사 전선의 실패는 유화 정책(Appeasement)의 한계와 국제 연맹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학계에서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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