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왕조(House of Stuart)는 14세기부터 스코틀랜드의 왕실이었으며, 1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는 잉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실이었던 가문이다. 가문의 명칭은 스코틀랜드의 최고궁내관(High Steward) 직위에서 유래하였으며, 원래 철자는 Stewart였으나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메리 스튜어트(Mary, Queen of Scots)가 프랑스식 철자인 Stuart를 사용하면서 정착되었다.
기원
스튜어트 가문의 시초는 브르타뉴 출신의 노르만계 귀족 앨런 피츠플래드(Alan fitz Flaad)로, 11세기 노르만 정복 이후 잉글랜드로 건너왔다. 그의 아들 월터 피츠앨런(Walter fitz Alan)은 스코틀랜드 왕 데이비드 1세를 따라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여 최초의 세습 최고궁내관(High Steward of Scotland)이 되었고, 렌프루셔의 영지를 부여받았다. 이후 이 직위는 가문의 세습 칭호가 되었고, 6대 궁내관 월터 스튜어트(Walter Stewart)가 로버트 브루스의 딸 마저리와 결혼하면서 왕실 혈통과 연결되었다.
스코틀랜드 왕조 (1371년 ~ 1603년)
1371년, 데이비드 2세가 후계 없이 사망하자 로버트 2세(Robert II)가 즉위하면서 스튜어트 왕조가 스코틀랜드의 왕실로 공식 출범하였다. 이후 제임스 1세부터 제임스 6세까지 9명의 군주가 스코틀랜드를 통치하였다. 1503년 제임스 4세는 잉글랜드의 헨리 7세의 딸 마거릿 튜더와 결혼하여, 스튜어트 가문이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혈통과 연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잉글랜드 및 그레이트브리튼 왕조 (1603년 ~ 1714년)
1603년, 튜더 왕조의 엘리자베스 1세가 후계 없이 사망하자, 헨리 7세의 증손자였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왕위를 함께 계승하여 제임스 1세(James VI and I)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동군연합(personal union)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제임스 1세와 그의 아들 찰스 1세(Charles I)가 의회를 무시하고 전제주의를 추구하면서 국왕과 의회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이는 청교도 혁명(English Civil War)으로 이어졌고, 1649년 찰스 1세는 처형되었으며, 왕정은 일시 폐지되고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이끄는 공화정(잉글랜드 연방)이 수립되었다.
1660년 왕정복고로 찰스 2세(Charles II)가 즉위하였으나, 그의 동생 제임스 2세(James II)가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 우대 정책을 펴자 1688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으로 축출되었다. 이후 제임스 2세의 딸인 메리 2세(Mary II)와 그녀의 남편 윌리엄 3세(William III)가 공동 통치하였고, 1702년에는 제임스 2세의 차녀 앤(Anne) 여왕이 즉위하였다.
왕조의 단절
1707년 연합법(Acts of Union)에 의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되었으나, 앤 여왕은 생존하는 자녀가 없었다. 1701년 왕위계승법(Act of Settlement)에 따라 가톨릭 신자는 왕위를 계승할 수 없게 되면서, 제임스 2세의 아들 제임스 에드워드 스튜어트(James Edward Stuart)와 그의 후손들은 계승권을 박탈당하였다. 이에 따라 1714년 앤 여왕 사후 왕위는 하노버 왕가(House of Hanover)로 넘어갔으며, 스튜어트 왕조의 정통 통치는 종료되었다.
자코바이트 운동
명예혁명 이후에도 제임스 2세와 그의 후손들을 지지하는 자코바이트(Jacobite) 운동이 지속되었다. 제임스 2세의 아들 제임스 에드워드(구 왕위 요구자, Old Pretender)와 손자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젊은 왕위 요구자, Young Pretender, 일명 보니 프린스 찰리)는 각각 1715년과 1745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807년 헨리 베네딕트 스튜어트(Henry Benedict Stuart) 추기경의 사망으로 스튜어트 가문의 남자 직계 혈통은 단절되었다.
역사적 의의
스튜어트 왕조는 영국사에서 왕권과 의회 권력이 정면으로 충돌한 전환기의 왕조였다. 이 시기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영국은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되었고, 의회 민권이 확립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또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을 통해 대브리튼 왕국의 기초가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