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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쿠 덴노

스토쿠 덴노(崇徳天皇, Sutoku-tennō, 1119년 7월 7일 ~ 1164년 9월 14일)는 일본의 제75대 천황(재위: 1123년 ~ 1142년)이다. 휘(諱)는 아키히토(顯仁)이며, 퇴위 후에는 신인(新院), 사누키인(讚岐院)으로 불렸다. 사후에 추증된 원호(院號)인 '스토쿠인(崇德院)'에서 유래하여 '스토쿠 덴노'로 통칭된다.

생애 및 재위

도바 천황(鳥羽天皇)과 중궁 후지와라노 쇼시(藤原璋子, 다이켄몬인)의 제1황자로 태어났다. 1123년, 5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나 실권은 조부인 시라카와 법황(白河法皇)이 쥐고 있었다. 1129년 시라카와 법황 사후에는 도바 상황이 원정(院政)을 행하였다. 1142년, 도바 상황의 강요로 양위하였으며, 이후 고노에 천황, 고시라카와 천황이 즉위하면서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호겐의 난(保元の乱, 1156년)

도바 법황이 사망하자, 스토쿠 덴노는 후지와라노 요리나가(藤原頼長)와 연대하여 고시라카와 천황 측에 맞서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호겐의 난). 그러나 패배하여 승려가 되었고, 사누키(讚岐, 현 가가와현)로 유배되었다. 이는 준닌 천황(淳仁天皇)이 아와지로 유배된 이후 약 400년 만에 천황 또는 상황이 지방으로 유배된 사건이었다.

유배와 사망

유배지 사누키에서 8년간 연금 생활을 하다 1164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인에 대해서는 병사설과 암살설이 전해지나 확실하지 않다. 유배 기간 동안 불교 경전 사경(写経)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령(怨霊) 전설

스토쿠 덴노는 일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원령(怨霊) 중 하나로 전승된다. 사후 조정이 그를 '죄인'으로 취급한 데 대한 분노가 각종 재앙을 불러왔다는 신앙이 형성되었다. 1177년(간겐 원년)의 대화재와 시시가타니 음모 사건 등이 그의 원령 탓으로 돌려졌으며, 고시라카와 법황은 이를 달래기 위해 그에게 '스토쿠인'이라는 원호를 올리고 사당을 세웠다.

후세에는 텐구(天狗)로 화했다는 전설이 생겨났으며, 일본 3대 원령(스가와라노 미치자네, 다이라노 마사카도, 스토쿠 덴노) 중 하나로 꼽힌다. 메이지 천황은 즉위 후 스토쿠 덴노의 영령을 교토로 모셔 시라미네 신궁(白峯神宮)을 세웠고, 쇼와 천황은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에 앞서 그의 능에 칙사를 보내 식년제(式年祭)를 거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적 업적

스토쿠 덴노는 와카(和歌)에 뛰어나 《사화화가집》(詞花和歌集)의 칙찬(勅撰)을 명하였으며, 《오쿠라백인일수》(小倉百人一首) 제77번에 그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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