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멜버른 브루스(Stanley Melbourne Bruce, 1883년 4월 15일~1967년 8월 25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인, 외교관, 사업가이다. 1923년부터 1929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의 제8대 총리를 역임하였다.
멜버른의 세인트킬다(St Kilda)에서 태어났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홀에서 수학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 소속으로 갈리폴리 전역에 참전했으며, 무공훈장(Military Cross)과 프랑스 크루아 드 게르(Croix de Guerre)를 수여받았다. 1917년 부상을 입고 오스트레일리아로 귀환한 후 정부의 징병 홍보 연설자로 활동하면서 정치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18년 하원의원 선거에 플린더스(Flinders) 선거구 국민당(Nationalist Party) 후보로 당선되었으며, 1921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재무장관(Treasurer)으로 임명되었다. 1923년 2월, 당시 총리였던 빌리 휴스(Billy Hughes)의 사임에 따라 국민당 대표 겸 총리직에 취임하였으며, 이후 컨트리당(Country Party)과의 연립 정권을 구성하여 1929년까지 집권하였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브루스는 '인력, 자금, 시장(men, money and markets)'이라는 구호 아래 적극적인 경제 개발 정책을 추진하였다. 영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도입하고 이민을 장려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와 경제 성장을 도모하였으며, 연방 정부의 행정 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수도의 청사인 캔버라로의 정부 이전을 완료하였다. 또한 과학산업연구위원회(CSIR, 훗날 CSIRO로 발전)를 설립하여 과학 기반 경제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과감한 산업 관계 개혁 시도는 노동 운동과의 빈번한 충돌을 초래하였다. 1929년, 연방 중재 법원 폐지를 포함한 급진적 산업 관계 개혁안이 자당 의원들의 이탈로 부결되었고, 이어진 총선에서 국민당은 참패하였으며 브루스는 자신의 지역구에서도 낙선하였다. 이는 현직 총리가 의원직을 상실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
1931년 하원에 복귀하여 조지프 라이언스(Joseph Lyons) 수상 내각에서 보좌역을 맡았으나, 곧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기를 선택하였다. 1933년 주영국 고등판무관(High Commissioner to the United Kingdom)으로 임명되어 1945년까지 재임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로 활동하며 국제 경제·사회 협력과 식량·영양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영국 전시 내각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이해를 대변하였으며, 처칠(Churchill) 수상과의 잦은 마찰에도 불구하고 자치령의 발언권 확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
1946년에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준비 위원회 의장을 맡았고, 1947년부터 1951년까지 FAO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며 국제 식량 안보와 영양 개선에 기여하였다. 1947년에는 영국 귀족 작위(Viscount Bruce of Melbourne)를 받아 오스트레일리아인 최초로 영국 상원(House of Lords)에 진출하였다.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ANU)의 초대 총장(Chancellor)을 지냈다.
1967년 8월 25일 런던에서 사망하였으며, 그의 유골은 캔버라의 벌리 그리핀 호수(Lake Burley Griffin)에 뿌려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수도 특별구의 브루스(Bruce) 지역구와 멜버른 남동부의 브루스 선거구(Division of Bruce)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