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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레 뒤 루아

스크레 뒤 루아(프랑스어: Secret du Roi)는 18세기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국왕 루이 15세 통치하에 운영되었던 비밀 외교 기관이다. 프랑스어로 '왕의 비밀'이라는 뜻이다.

개요

루이 15세는 공식 외교 채널과 별도로 자신의 개인적 외교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비밀 외교 채널을 운영하였다. 약 20년 이상 지속된 이 비밀 네트워크는 때로는 프랑스의 공식 외교 정책과 상충되는 방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32명의 요원으로 구성되어 출발하였으며, 초기에는 추기경 플뢰리(Cardinal Fleury)가 주도하였고 이후 샤를 프랑수아 드 브로이 백작(Charles-François de Broglie)과 장 피에르 테르시에(Jean-Pierre Tercier)가 이끌었다.

역사

부르봉 왕조의 정보 활동은 루이 13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의 부하였던 요셉 신부는 국내외에서 많은 요원을 운용하였다. 루이 14세 시대에는 정보 활동의 초점이 외교보다 내정에 맞춰져 있었으나, 해외에서의 권익과 상업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해상 정보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1711년에는 칠레와 페루의 항구까지 스파이를 배치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국가 단위의 통일된 정보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고, 각 왕이 사적으로 정보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루이 15세는 루이 14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별도의 정보 조직을 설치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전국 우편물을 몰래 열람하는 '카비네 누아'(Cabinet noir, '검은 방')를 설치하였다.

스크레 뒤 루아 설립의 직접적 계기는 폴란드를 둘러싼 러시아-프랑스 간의 대립이었다. 루이 15세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폴란드 문제에 개입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콩티 왕자(Prince de Conti)의 폴란드 왕위 비밀 후보 추대를 계기로 비밀 외교 채널이 탄생하였다.

주요 활동

스크레 뒤 루아는 유럽 전역에 광범위한 첩보망을 구축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이 기관의 전신은 1741년 러시아 궁정 혁명을 주도하여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를 황제 자리에 오르게 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주요 요원

스크레 뒤 루아에서 활동한 주요 요원으로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다.

  • 슈발리에 데옹(Chevalier d'Éon): 여장 검사로 유명한 프랑스 외교관 겸 스파이
  • 피에르 보마르셰(Pierre de Beaumarchais): 극작가로 《피가로의 결혼》 등을 집필
  • 볼테르(Voltaire): 이후 계몽주의 철학자로 활약
  • 샤를 테브노 모란드(Charles Théveneau de Morande)
  • 루이 드 노아이유(Louis de Noailles)
  • 베르젠(Charles Gravier, comte de Vergennes): 이후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외무 장관 역임

해체와 영향

스크레 뒤 루아는 1774년 루이 15세가 사망하면서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체 이후에도 일부 요원들이 계속 활동하였으며, 이들 중 일부는 프랑스와 그 동맹국들이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하는 과정에서 관여하였다.

참고 문헌

  • Scott, Hamish; Simms, Brendan (2007). 《Cultures of Power in Europe During the Long Eighteenth Centur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0-521-84227-3.
  • Claude Faure (2004). 《Aux services de la République : Du BCRA à la DGSE》. Paris: Fayard. ISBN 9782213615936.
  • Warlin, Jean-Fred (2014). 《J.-P. Tercier, l'éminence grise de Louis XV》. Paris: L'Harmattan. ISBN 978-2-336-305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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