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투스주의(Scotism)는 13세기 스코틀랜드 출신의 스콜라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요한네스 둔스 스코투스(Johannes Duns Scotus, 약 1266~1308)의 사상에 기반한 철학적 학파이자 신학적 체계를 가리킨다. 스코투스는 프란치스코회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미묘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주저 《옥스퍼드 명제집 주석》(Opus Oxoniense)은 중세 철학과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중요한 문서로 평가된다.
스코투스주의는 로마 가톨릭교회 내에서 토마스주의(Thomism)와 더불어 중세 후기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두 학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스코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폭넓게 활용하면서도 이를 날카롭게 비판적으로 수용하였고,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장과 여러 지점에서 논쟁을 벌였다.
스코투스주의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신학적 입장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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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일의성(univocity of being): 스코투스는 '존재'라는 개념이 신과 피조물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로 적용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신과 피조물 사이의 존재 개념에 차이가 있다고 본 아퀴나스의 유비론(analogia entis)과 대비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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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구별(formal distinction): 실재적 구별과 개념적 구별 사이에 존재하는 세 번째 종류의 구별로서, 동일한 사물 안에서 형식적으로 구분되는 측면을 인정하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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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키티(haecceity, '이것임'): 개별 사물을 그 자체로 개별화시키는 원리로서, 개체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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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 신적 이성보다 신적 의지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신이 선택하는 행위가 선한 것이라는 견해를 담고 있다. 스코투스의 주의주의적 경향은 신의 자유의지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논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스코투스주의는 오래된 프란치스코 학파에서 발전하였으며, 중세 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역사적으로 스코투스주의는 주로 프란치스코회 내에서 지지자를 얻었으나, 일부 세속 학자들과 다른 수도회(아우구스티누스회, 세르비테스회 등)에서도 지지자가 나타났다. 특히 영국, 아일랜드, 스페인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스코투스주의 학파로서의 체계적 확립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이루어졌으며, 17세기 초에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 파리, 로마, 코임브라, 살라망카, 알칼라, 파도바, 파비아 등 유수의 대학에 스코투스주의 전공 교수직이 설치되었다. 18세기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였으나 19세기에 이르러 쇠퇴하였다. 다만 스코투스의 일부 입장, 특히 성모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 교리와 관련한 사상은 1854년 교황 비오 9세의 교서 《이네파빌리스 데우스》(Ineffabilis Deus)에 의한 교리 확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20~21세기에 들어서도 프란치스코회를 중심으로 한 신학자들(케넌 오스본, 대니얼 호런 등)이 스코투스주의적 전통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개신교 학자 가운데는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가 스코투스주의 전통의 영향권에 있는 인물로 언급되기도 한다.
스코투스주의와 토마스주의는 각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상이한 해석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 두 학파 사이의 차이와 화해 가능성에 대해서는 중세 이래 여러 학자들에 의해 비교·논의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