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레츠(불가리아어: Смилец, 라틴 문자 표기: Smilets)는 1292년부터 1299년까지 불가리아 제2차 제국을 통치한 차르(황제)이다. 그의 통치는 몽골 제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불가리아의 정치적 불안정과 외부 세력의 간섭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생애 및 즉위
스밀레츠의 정확한 출신 배경은 명확하지 않으나, 코틀렌(Kotlen) 산맥 지역의 부유한 불가리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추정된다. 그는 몽골 골든 호르드의 칸인 노가이 칸(Nogai Khan)의 지원을 받아 차르로 즉위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불가리아는 몽골의 속국과 다름없는 상태였으며, 노가이 칸은 기존의 차르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George Terter I)를 폐위시키고 스밀레츠를 새로운 통치자로 세웠다.
통치 기간
스밀레츠는 몽골의 꼭두각시 군주로서 통치했으며, 그의 주요 정책은 몽골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이루어졌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불가리아는 지속적으로 몽골에 공물을 바쳐야 했다.
그는 비잔티움 황제 미카일 8세 팔레올로고스(Michael VIII Palaiologos)의 조카딸인 팔레올로기나(Palaiologina)와 결혼하여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혼인 관계에도 불구하고 스밀레츠의 통치 말기에는 비잔티움 제국과의 충돌이 잦았으며, 비잔티움군은 불가리아 남부 지역을 침공하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는 귀족들의 반목과 중앙 권력의 약화가 두드러졌다. 스밀레츠는 독립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으며, 국가적 위기를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몰락과 계승
1299년, 노가이 칸이 죽고 그의 아들 차카(Chaka)가 불가리아를 침공하자, 스밀레츠는 수도 터르노보(Turnovo)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의 이후 행적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일부 학자들은 그가 도피 중에 사망했거나 암살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스밀레츠의 아들 이반 2세(Ivan II)가 잠시 차르 자리를 이었으나, 곧 몽골의 차카 칸에게 자리를 빼앗겼고, 차카는 터르노보에 입성하여 스스로 불가리아의 차르를 칭했다. 스밀레츠의 딸 테오도라(Theodora)는 세르비아의 왕 스테판 우로시 3세 데찬스키(Stefan Uroš III Dečanski)와 결혼하여 세르비아-불가리아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평가
스밀레츠의 통치는 불가리아 제2차 제국이 몽골의 지배 아래 놓여 약화되고 혼란스러웠던 시기를 대표한다. 그는 몽골의 간섭으로 인해 독립적인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그의 재위 기간은 불가리아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 중 하나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