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Three Mile Island Nuclear Generating Station, TMI)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서스쿼해나 강에 위치한 스리마일섬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이다. 발전소의 이름은 인근 도시인 미들타운에서 하류로 약 3마일(약 4.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다.
발전소는 총 2기의 가압경수로(PWR)형 원자로로 구성되어 있었다. 1호기는 1968년 5월 착공하여 1974년 9월 상업운전을 시작하였으며, 출력은 837MWe이다. 2호기는 1969년 11월 착공하여 1978년 12월 30일 상업운전을 시작하였으며, 출력은 959MWe로 설계는 밥콕 앤 윌콕스(Babcock & Wilcox)사가 담당하였다.
1979년 3월 28일 새벽 4시, TMI 2호기에서 미국 상업 원자력 역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되는 노심용융(nuclear meltdown) 사고가 발생하였다. 사고의 발단은 2차 계통의 주급수 차단으로 시작되었다. 보수점검을 위해 보조급수계통의 밸브가 잠겨 있어 작동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1차 계통의 열 제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가압기 방출밸브가 열렸으나 닫힘 과정에서 불완전하게 밀봉되어 냉각수가 계속 유출되었다. 운전원은 계기판의 오작동 신호로 인해 냉각수 손실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고, 안전주입계통까지 차단하면서 핵연료의 용융이 시작되었다. 이후 노심의 절반 이상이 녹아내렸으나, 원자로 용기(Reactor Pressure Vessel) 자체는 파손되지 않았다.
사고의 방사능 누출은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1m 두께의 격납 용기 덕분에 발전소 부근 주민들의 방사능 노출 수준은 가슴 X선 촬영 2~3회 정도에 해당하는 수준이었으며, 국제 원자력 사건 등급(INES) 체계에서 등급 5(사고 범위)로 분류되었다. 주 정부는 도핀 카운티의 임산부와 어린이들을 대피시켰으며, 공황 상태에 빠진 약 10만 명의 주민이 일시에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사고는 미국 원자력 산업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고 당시 129기의 원전 건설 계획이 승인을 받은 상태였으나, 이미 건설 중이던 53기만 완공되고 나머지 계획은 취소되었다.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은 사고 현장을 방문한 후 "미국은 새 원전을 짓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거세졌고, 반핵 운동이 강화되었다. TMI 2호기는 사고 직후 영구 폐쇄되었으며, 정화 작업은 198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고 약 10억~18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사고의 여파로 미국 원자력 업계는 INPO(Institute of Nuclear Power Operation)라는 기구를 창설하여 원전 간 운영 경험 교환, 성능 목표 설정, 안전성 향상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 사고는 원자력 발전소 설계에 있어 인간-기계 연계 요소(MMI)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으며, 운전원 교육 훈련 강화 및 절차서 개선 등의 후속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개선 사항은 대한민국의 원자력 발전소에도 적용되었다.
TMI 1호기는 사고 당시에는 손상되지 않았으나 1985년 10월까지 가동이 중단되었다가 이후 재개되었다. 1호기는 2019년까지 정상 운영되었다. 2024년에는 콘스텔레이션 에너지(Constellation Energy)가 마이크로소프트와 20년간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AI 및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TMI 1호기의 재가동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