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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량차이

스량차이(史量才, 1880년 1월 2일 ~ 1934년 11월 13일)는 중국 민국(中華民國) 시기의 언론인이자 신문 경영인이다. 본명은 가슈(家修)이며, 장쑤성(江蘇省) 장닝(江寧) 출신이다. 상하이(上海) 칭푸현(青浦縣)의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01년 항저우 잠학관(杭州蠶學館, 현재의 저장이공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상하이로 이주하였다. 1904년 여자 잠상학교(女子蠶桑學校)를 설립하였고,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05년에는 장쑤 교육총회(江蘇教育總會)를 발기하여 설립하는 데 참여하였다.

1912년 9월, 장젠(張謇) 등과 함께 12만 원을 투자하여 상하이의 대표적 신문인 《신보(申報)》의 경영권을 인수하였고, 이후 단독 소유주가 되어 총경리(總經理)로 취임하였다. 1929년에는 《신문보(新聞報)》와 《시사신보(時事新報)》의 주식을 대거 매입하며 상하이 언론계의 거물로 자리매김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九一八事變) 이후, 스량차이는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내전에 반대하고 항일을 주장하는 논조를 펼쳤다. 1932년 《신보》 지면을 통해 좌익 작가들의 글을 대거 게재하며 장제스(蔣介石)의 공산당 토벌 정책을 비판하였고, 이로 인해 《신보》는 우편 금지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쑹칭링(宋慶齡)과 양싱포(楊杏佛)가 조직한 '중국민권보장동맹(中國民權保障同盟)'에 참여하여 언론 자유와 민권 운동을 지지하였다.

1934년 11월 13일, 항저우에서 위병 치료를 마치고 상하이로 귀환하던 중 후항공로(滬杭公路) 옹가부(翁家埠, 현재의 저장성 하이닝시)에서 암살당하였다. 당시 그와 함께 있던 운전사와 아들의 동학 등 3명이 사망하였고, 아들은 간신히 도주하여 생존하였다. 이 암살은 장제스의 명령을 받은 군통(軍統, 국민당 비밀경찰)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스량차이의 비판적 언론 활동과 좌익 인사에 대한 지원이 배경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량차이는 중국 근대 언론사의 상징적 인물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활동하다 암살된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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