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崇禮門, Sungnyemun)은 조선의 수도 한양도성의 남쪽 정문으로, 흔히 남대문 (南大門, Namdaemun)으로도 불린다. 1398년(태조 7년)에 완공되었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 숭례문은 1396년(태조 5년)에 착공되어 1398년에 완공되었다. 이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한 후 도성 건설과 함께 이루어진 주요 사업 중 하나였다. 건립 당시에는 도성의 4대문 중 남쪽을 담당하는 문이었다. 이후 세종 대(1447년)와 성종 대(1479년)에 큰 규모의 중수(重修)가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에는 도성으로 드나드는 주요 통로이자 국왕의 행차, 사신의 영접, 군대의 출정 등 중요한 의례가 거행되던 장소였다. 일제강점기인 1907년과 1908년에 도로 확장 등을 이유로 좌우 성벽이 훼철되면서 문루만 남게 되었고, 이때부터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1962년에는 대한민국 국보 제1호로 지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인해 문루의 90%가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5년 3개월간의 복원 공사를 거쳐 2013년 5월 4일에 일반에 재개방되었다. 복원 과정에서는 소실된 부재와 동일한 전통 재료와 기법이 사용되었으며, 훼손되었던 성벽 일부도 함께 복원되었다.
구조 및 특징 숭례문은 화강암으로 축조된 아치형의 홍예문(虹霓門) 위에 목조 누각을 올린 2층 건물이다.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계 양식으로, 지붕은 우진각 지붕 형태를 띠고 있다. 아래층은 공포(栱包)가 밖으로 길게 뻗어 나온 출목(出目)이 많은 반면, 위층은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러한 건축 양식은 조선 초기 다포계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숭례문의 현판은 원래 세로로 걸려 있었으나,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해 세종 때 가로 현판으로 교체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현재는 처음부터 가로 현판이었고, 한때 세로로 바뀌었다가 다시 가로 현판으로 복원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복원된 숭례문 현판은 원래의 가로 현판이다. 본래 문루의 양옆에는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고, 문 앞에는 옹성(甕城)이라는 작은 성벽이 문을 감싸고 있었으나, 현재는 복원된 성벽과 옹성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의의 숭례문은 서울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다.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한양도성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역사적 가치와 함께, 조선 초기 목조 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2008년 화재는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철저한 고증과 전통 기법을 통한 복원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