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음화(脣音化, labialization)
순음화는 음성학·음운론에서 입술이 관여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로, 어떤 소리가 발음될 때 입술을 둥글게 말아 원순성(圓脣性)을 동반하는 2차 조음(secondary articulation) 현상을 의미한다. 둘째로, 어떠한 분절음이 동화(同化) 등의 음운 현상을 통해 원순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뜻한다. 이를 원순화(圓脣化)라고도 부르며, 국제음성기호(IPA)에서는 일차 조음을 나타내는 기호 뒤에 보조 기호 [ʷ]를 첨가하여 표기한다.
음성학적 의미
보편적인 음성학적 관점에서 순음화는 발화 중 입술을 둥글게 말아 발음하는 현상이다. 예컨대 이중모음의 반모음 [w] 앞에서 이에 선행하는 자음이 미리 [w]의 입술 모양을 취한 채 발음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원순모음(圓脣母音)에 의하여 그에 선행하는 자음이 역행적으로 원순화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음성적인 상사(相似)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권(卷)', '광(庫)' 등의 [kʷ] 발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어 음운론에서의 순음화
한국어 국어학에서는 순음화가 보다 구체적인 음운 변화 양상으로 논의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국어의 경우 순음 'ㅂ·ㅍ·ㅃ·ㅁ'에 의하여 후속 모음 '으·ᄋᆞ'가 원순모음인 '우·오'로 순행동화되는 음운 현상, 즉 원순모음화(圓脣母音化)를 일컫는다.
한국어의 역사적 변천 과정에서 이 원순모음화는 17세기 말엽에 중앙어에서 생산적으로 일어났다.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는 '불(<블)', '붓다(<븟다)' 등이 나타나고, 『동문유해(東文類解)』(1748)에는 '뿔[角]', '풀[草]', '나물[菜]', '붉다[紅]' 등이 나타나는데, 이는 어간 형태소 내부에서의 순음화를 보여 준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형태소 경계에서의 원순모음화도 실현될 수 있게 되었다. '드리우시문', '널부리다', '나문', '사무미랴' 등에서와 같이 용언 활용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분철 표기를 흔히 보이는 체언 곡용의 경우에는 원순모음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모음 체계에 미친 영향
이러한 원순모음화는 모음 체계의 측면에서 'ㅡ'와 'ㅜ'가 원순성에 의한 대립의 짝이 됨을 의미한다. 원순모음화에 이어 18세기 후기에는 순음 아래에서 'ㅗ'가 'ㅓ'로 바뀌는 비원순모음화가 나타나는데(몬져>먼져, 1794년), 이는 다시 'ㅗ'와 'ㅓ'가 원순성에 의한 짝이 되도록 모음 체계상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방언적 특징
'으>우'의 원순모음화 이외에, 일부 남부 방언과 동북 방언에서 일어난 'ᄋᆞ>오'의 현상도 순음화의 한 유형으로 주목된다. 'ᄆᆞᆯ>몰', 'ᄆᆞᆰ다>몰ᆨ다', 'ᄑᆞ리>포리' 등에서 볼 수 있는 이 현상은 제1음절에서의 'ᄋᆞ>ㅏ'의 합류가 일어나기 전에 실현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방언에서는 'ᄋᆞ>ㅏ'가 원순모음화에 앞서 일어났기에 'ᄆᆞᆯ>말'만이 실현된 것으로 설명된다.
현대국어에서의 양상
현대국어에서는 어간 형태소 내부에서는 원순모음으로 굳어졌으며, 형태소 경계에서는 어간말의 순음에 의하여 조사의 첫 모음 'ㅡ'는 'ㅡ'에 가깝게 실현되나 어미의 'ㅡ'는 'ㅜ'에 가깝게 수의적으로 순음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편 순음화는 특정 자음 동화 현상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설단음 'ㄴ, ㄷ'이 뒤 음절 첫소리 순음에 동화되어 순음 'ㅁ, ㅂ'으로 발음되는 수의적 음운 변동을 순음화로 보기도 한다.
순음화는 국어학과 일반 음운론에서 모두 다루어지는 용어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표준국어대사전, 위키백과 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남광우의 '원순모음화현상에 대한 연구'(1974), 이승재의 '남부방언의 원순모음화와 모음체계'(1977) 등의 학술 연구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