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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릉 (경순왕후)

순릉(純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조모(祖母)인 경순왕후(敬順王后) 박씨의 능이다. 경순왕후는 태조의 할아버지인 추존왕 도조(度祖) 이춘(李椿)의 비(妃)이며, 본관은 문주(文州, 혹은 문천) 박씨이다. 아버지는 원나라에서 천호(百戶)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증직된 박광(朴光)이다. 도조와의 사이에서 아들 이자흥(李子興)과 이자춘(李子春)을 두었으며, 이자춘은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인 환조(桓祖)이다.

1392년(태조 원년) 7월, 태조가 즉위한 직후 4대 조상을 추존하면서 경순왕후는 경비(敬妃)로 추존되었고, 같은 해 8월 8일 능호(陵號)를 순릉(純陵)으로 올렸다. 이후 태종 재위 기간 중 경순왕후(敬順王后)로 재추존되었다. 경순왕후의 기일(忌日)은 7월 23일이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순릉은 원래 함길도 함주(함경남도 함주군 서호면 능전리)에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1398년(태조 6) 3월, 술사(術士)의 상언으로 자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귀주(현 함경남도) 동쪽 임방(壬方) 산등성이로 이장(移葬)되었으며, 이후 함경남도 흥남시 마전리(현 함흥시 동명사 부근)에 위치하게 되었다. 태조는 이장 당시 석실과 난간 등 석물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선원전(璿源殿)을 새로 세우는 등 공역을 크게 벌였는데, 이로 인해 신하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조선 전기 순릉의 능역 구성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현재 사진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북도각릉도형(北道各陵圖形)』, 『북로능전지(北路陵殿志)』, 『춘관통고(春官通考)』 등의 문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순릉은 상중하계(上中下階) 3단의 계단식 구조로, 상계에는 병풍석을 두른 봉분 앞에 상돌(혼유석)이 배치되었고, 봉분 주변에는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이 있었다. 중계에는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 석마(石馬)가, 하계에는 무석인(武石人)과 석마가 건립되어 있었다. 이는 조선 전기 추존 왕릉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순릉 내 금석문 중 1393년(태조 2)에 세워진 표석은 앞면에 '경비순릉(敬妃純陵)', 뒷면에 '홍무이십육년시월일립(洪武二十六年十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1901년(광무 5)에는 고종이 직접 어필(御筆)로 '대한경순왕후순릉(大韓敬順王后純陵)'이라는 전서(篆書)를 써서 표석을 하사하였고, 1906년에 비각(碑刻)을 건립하였다. 순릉은 조선시대 내내 지속적으로 관리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현종·경종·순조·헌종·철종·고종 연간에 능역 보수 및 정비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한편, 순릉(純陵)과 동일한 한자음을 가진 다른 능으로 조선 성종의 비 공혜왕후(恭惠王后)의 능인 순릉(順陵)이 경기도 파주에 별도로 존재하므로 혼동에 유의하여야 한다. 경순왕후의 순릉은 현재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동명사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현대에 들어 능역 주변의 정확한 상태는 파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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