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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부정

수천부정(秀泉副正)은 조선 전기의 왕족 이정은(李貞恩)에게 부여된 봉작(封爵)으로, 조선 태종의 서손자였던 이정은을 가리키는 호칭이기도 하다. 한자 표기는 "秀泉"이 "秀川"으로도 쓰여, 문헌에 따라 '수천부정(秀川副正)'으로도 표기된다. 본래 수천부정은 종3품의 종친(宗親) 봉작이며, 이후 이정은은 도정(都正)을 거쳐 수천군(秀泉君)으로 승봉되었다가, 후손들의 출세로 숭헌대부 군(君)에 추증되었다.

개요

수천부정 이정은은 조선 제3대 왕 태종(太宗)의 열한 번째 서자이자 유복자인 익녕군 이치(益寧君 李袳)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익녕군의 첩인 평양조씨(平壤趙氏)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정중(正中), 호는 월호(月湖)·남곡(嵐谷)·설창(雪窓)이다. 생몰년은 기록이 실전되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87세까지 장수한 것으로 전한다.

아버지 익녕군은 본부인 운봉박씨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고 첩인 평양조씨에게서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정은은 그 둘째 아들이었다. 형 이승은(李承恩)은 의천부정(義泉副正)에 봉작되었다가 의천군(義泉君)으로 승봉되었다.

인물과 활동

이정은은 어질고 총명하며 공손하고 겸손한 인품으로 알려졌다. 학문을 할 때는 글자보다 이치(理致)를 중시했고, 시를 지을 때는 격조(格調)를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또한 음률(音律)에 능해, 고음과 화성을 신묘하게 조화시켜 슬픈 곡을 연주하면 듣는 이가 반드시 울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는 조선 전기의 사림파 인사들과 교유하였다. 김굉필(金宏弼), 남효온(南孝溫) 등과 가깝게 지냈으나, 성종 대에 사림파가 정치적 역량을 높여 가자 이들과의 교류를 끊었다. 한편으로는 당시 세속을 비판하며 은둔하던 김시습(金時習)을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친분을 유지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1481년 김시습이 조부와 부친을 제사하고 안씨를 새 아내로 맞았을 때, 이정은은 남효온·안응세 등과 함께 김시습과 깊이 교유한 기록이 있다.

봉작과 추증

이정은은 일찍이 수천부정(秀泉副正)에 봉작되었고, 이후 종친부도정(宗親府都正)을 지낸 뒤 수천군(秀泉君)에 봉해졌다. 사후에는 손자인 함천군 이억재(李億載)의 출세로 수천도정(秀泉都正)에 증직되었고, 이후 증손자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이 정승 반열에 오르면서 다시 숭헌대부(崇憲大夫)에 증직되고 수천군으로 추봉되었다.

이정은은 조선 광해군·인조 연간의 청백리 정승이었던 오리 이원익의 증조할아버지이며, 문신 허목(許穆)의 처가 되는 전주이씨는 그의 5대손이다.

가족

본부인은 현부인(縣夫人) 문화류씨(文化柳氏)로, 아들 청기수(靑杞守) 증 청기군 이표(李彪)를 두었다. 계비는 현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로, 아들 부림수 이표(李豹), 결기수 이현(李玄), 무령수 이월(李越)을 두었다. 이정은과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장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들 청기부정 이표는 83세, 손자 함천군 이억재는 84세, 증손자 오리 이원익은 88세까지 살았다.

묘소

이정은은 처음 경기도 금천군 서면 소하리(현재 광명시 소하동) 마산두에 안장되었으며, 묘비문은 의정부영의정을 지낸 심희수(沈喜壽)가 지었고 글씨는 외현손인 청음 김상헌(金尙憲)이 썼다. 이후 도시계획사업 등으로 묘역이 정비되면서 부인들의 묘가 합장·천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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