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과 순애는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제작된 1931년 무성영화의 제목이자, 그 영화의 주인공인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름을 합쳐 부르는 호칭이다. 이 작품은 한국 근대 대중문화사에서 각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야기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영화·노래·연극 등으로 재창작되었다.
1931년 영화
「수일과 순애」는 이구영(李龜永) 감독이 연출하고, 윤봉춘(尹逢春), 이경선(李慶善), 김연실(金蓮實), 심영(沈影) 등이 출연한 무성영화이다. 1931년 3월 13일 서울 단성사(團成社)에서 개봉하였다. 제작사는 대경영화양행(大慶映畵養行)이고, 촬영은 이명우(李明雨)가 담당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밝은 달빛이 비치는 대동강가에서 이수일과 심순애는 말없이 달빛만 바라본다. 백년해로를 맹세했던 순애가 장안 갑부 김중배에게 시집을 가버린 상황이다. 수일은 돈을 모으기로 결심하고 일인(日人)이 경영하는 고리대금업자에게 고용된다. 한편 순애는 수일을 잊지 못하고 사모하다 병석에 눕게 되고, 운명이 가까워져 비보를 받고 달려간 수일과 두 사람은 다시 새출발을 기약한다. 장르는 멜로드라마로 분류된다.
이 영화는 장면을 촬영할 때 현장에 레일을 깔고 이동차를 움직여 촬영한 최초의 한국 영화로 알려져 있다.
원작 이야기: 이수일과 심순애
「수일과 순애」의 원형은 한국 근대 대중문학의 대표적인 통속소설인 「이수일과 심순애」 (일명 「장한몽」)이다. 이 소설은 영국의 작가 버사 클레이(Bertha M. Clay, 1836~1884)의 《여자보다 약한(Weaker than a Woman)》을 일본의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가 《금색야차(金色夜叉)》로 번안한 것을, 조중환(趙重桓, 1863~1944)이 다시 한국어로 번안한 3차 번안 작품이다.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제목으로 1913년부터 1915년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소설의 제목보다는 주인공 이름을 딴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명칭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주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이수일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그러나 부갓집 아들이자 도쿄 유학생인 김중배가 심순애를 유혹하고, 물질에 마음이 흔들린 심순애는 이수일을 버리고 김중배와 결혼한다. 배신감에 분노한 이수일은 고리대금업자의 서기가 되어 재산을 모은다. 이후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가 이수일에게 사과하지만 그는 냉담하게 그녀를 내치고, 심순애는 대동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했다가 이수일의 친구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이야기는 두 사람이 백낙관의 설득으로 재결합하여 새 출발을 기약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는 특히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렇게도 좋더냐?" , "순애야, 저 달을 보아라. 저 달이 흐리면 이수일이가 피눈물을 흘리는 줄 알아라" , "노~아라!" 와 같은 명대사들로 유명하며, 이후 1960~1970년대 한국의 TV 코미디나 학예회 등에서 신파극 특유의 과장된 연기를 대표하는 소재로 폭넓게 패러디되었다.
영화화의 역사
「이수일과 심순애」(장한몽) 이야기는 총 7회에 걸쳐 영화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장한몽」(1920): 이기세 감독, 조선문예단 제작, 1920년 4월 28일 우미관 개봉.
- 「장한몽」(1926): 이경손 감독, 계림문화협회 제작, 1926년 3월 18일 단성사 개봉. 소설 《상록수》의 작가인 심훈(沈熏)이 이수일 역으로 출연.
- 「수일과 순애」(1931): 이구영 감독, 1931년 3월 13일 단성사 개봉. 본 항목에서 다루는 영화.
- 「애정과 반항」(1959): 오승호 감독, 1959년 8월 7일 수도극장 개봉. "돈이냐? 사랑이냐?"라는 부제로도 알려짐.
- 「이수일과 심순애」(1965): 김달웅 감독, 1965년 10월 1일 세기극장 개봉. 신성일이 이수일, 김지미가 심순애 역을 맡음.
- 「장한몽」(1969): 신상옥 감독, 1969년 8월 1일 명보극장 개봉. 관람인원 40,380명. 신성일이 이수일, 윤정희가 심순애 역.
- 「가버린 사랑」(1973): 김기 감독, 1973년 12월 27일 개봉. 앞선 영화들에서 이수일 역을 맡았던 신성일이 이번에는 김중배 역을 맡았음.
동명의 노래
한편 「수일과 순애」라는 제목의 대중가요도 존재한다. 1965년 가수 후랑크 백(Frank Baek)이 부른 노래로, 한산도가 작사하고 백영호가 작곡하였다. 이 노래는 일명 '수일과순애'로 표기되며, 백영호 작곡집 및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에 수록된 바 있다. 가사는 "꿈엔들 변할 줄을 생각이나 했으랴 / 그렇게 다짐하고 맹서 했던 내 사랑"으로 시작하여, 원작 이야기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다만 이 노래의 정확한 발매 연도, 앨범 구성, 세부 정보에 대해서는 확인된 출처가 제한적이다.
문화적 의의
「이수일과 심순애」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운 연애관과 개인의 욕망을 대중에게 처음으로 전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연애 소설이 곧 '개인'의 발견을 이끌어낸 매개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이 이야기는 한국의 신파극(新派劇)의 대표 사례로 손꼽히며,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남겼다.
기타
일본의 원작 소설 《금색야차》의 배경이 되는 아타미(熱海)에는 이 이야기의 장면을 재현한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인근에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오미야의 소나무'가 있다. 또한 원작 소설은 1990년대 한국에서 극중극 형태로 드라마화된 사례도 있다. 다만 「수일과 순애」라는 명칭이 한국어 사전류에 별도의 표제어로 등재된 정보는 확인되지 않으며, 주로 영화 제목 및 인물 이름의 결합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