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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백씨

수원 백씨(水原 白氏)는 경기도 수원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한국의 백씨(白氏)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본관으로,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인구는 약 354,428명으로 집계되었다.

시조 및 유래

『백씨대동보』에 따르면 시조는 백우경(白宇經)으로, 중국 소주(蘇州) 출신이며 당(唐)나라에서 이부상서를 지내다 780년(신라 선덕왕 1년) 신라에 건너와 경주 자옥산 아래에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후 계대(系代)가 불명확하여, 신라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中始祖)로 받들고 있다. 다만 시조의 동래설에 대해서는 위키백과에서 "보다 명확한 고증이 될 사료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다른 문헌(풍기진씨족보, 전주이씨선원록)에 등장하는 백광선(白光善)이라는 인물이 오히려 시조와 비슷하거나 앞선 시기의 인물로 추정되어 시조 동래설에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백창직의 증손인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졌다는 내용과, 그의 9세손 백천장(白天藏)이 원나라에서 우승상을 지내고 귀국하여 고려 충선왕 때 수성백(隋城伯, 수성은 수원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는 내용이 전해지나, 위키백과는 이 역시 사적(史籍)에 기록이 없는 것으로 서술한다.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수원 백씨가 개성(開城)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적上 수원을 본관으로 처음 쓴 인물은 1427년(세종 9) 친시(親試)에서 과거 답안지에 본관을 '수원'으로 기재한 백효삼(白效參)이다. 조선조 이래 백효삼의 후손들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면서 자손이 번성하였고, 조선 말에는 수원 관백씨가 백씨 전체의 대종을 이루게 되었다.

분파

수원 백씨는 여러 분파로 나뉜다. 주요 분파로는 선정공파(백인관), 인주공파(백역), 오산군파(백양신, 청도 백씨로 분파), 장단공파(백유), 담암공파(백문보, 직산 백씨로 분파), 양곡공파(백무신), 태사공파(백가신), 정신재공파(백장, 해미 백씨로 분파), 문경공파(백인걸) 등이 있다. 이 중 일부는 염포 백씨, 부여 백씨, 대흥 백씨 등 독립된 본관으로 갈라져 나갔다.

주요 인물

  • 백인걸(白仁傑, 1497~1579): 조선 중기의 문신. 조광조의 문인이며 이이와 성혼의 스승. 대사헌, 공조참판 등을 지냈고 사후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 백광현(白光炫, 1625~1697): 조선 후기의 의원. 독학으로 침술과 종기 치료에 능하여 현종·숙종의 종기를 치료하였고, 정2품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 백동수(白東脩, 1743~1816): 조선 후기의 무신. 정조의 명으로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였고, 당대 최고의 무인으로 평가받았다.
  • 백용성(白龍成, 1864~1940):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독립선언문에 서명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백정기(白貞基, 1896~1934): 독립운동가. 윤봉길, 이봉창과 함께 '3의사'로 불리며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백인제(白麟濟, 1898~1950): 의사. 백병원을 설립하였고, 서울의대 부속병원장, 대한외과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하였다.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

집성촌

수원 백씨는 전국에 걸쳐 분포하며, 특히 전라남도 장흥군에 집성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관 통합 논의

1857년 백씨의 첫 대동보(정사보)를 발간할 때부터 백씨 여러 본관을 수원으로 통합하려는 논의가 있어 왔으나, 다른 본관(직산, 남포, 대흥, 부여, 청도 등)의 반발로 단일 본관화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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