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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조합

수리조합은 1906년에 제정된 수리조합조례에 따라 관개·배수 시설의 신설, 보수 및 관리를 목적으로 설치된 조합입니다.


개요

  • 설립 근거: 1906년 수리조합조례 → 1917년 조선수리조합령으로 정비
  • 목적: 농경지에 대한 관개(물대기) 및 배수 시설의 설치·유지·관리
  • 조합원: 관개농지를 가진 농민을 조합원으로 하는 자치조직
  • 성격: 명목상 자치조직이었으나, 실제로는 정부(일제)의 지휘·감독과 지원을 받음
  • 변천:
    • 1908~1909년: 옥구서부, 임익, 마구평, 임익남부 등 최초 설립
    • 1962년: 토지개량조합으로 개칭
    • 1970년: 농지개량조합으로 개칭

역사적 배경 (일제강점기)

일제는 산미증식계획(1910~1930년대)의 일환으로 수리조합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켰습니다. 이는 조선을 일본의 식량(쌀) 공급지로 삼기 위한 식민지 농업정책이었습니다. 수리조합을 통해 농경지의 생산성을 높여 증산된 쌀을 일본으로 수출(사실상 약탈)하는 체제였습니다.


수리조합 반대운동

일제의 수탈적 성격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수리조합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시기 주요 특징
초기 (1920년대 초) 수리조합 설치 자체에 반대, 중·소자작농 중심의 진정·시위
중·후기 (1920년대 중반~1930년대) 과다한 수세(水稅) 부담, 소작료 인상에 항쟁, 농민조합 조직, 수리조합 습격, 일본경찰과 충돌
  • 최초 반대운동: 1921년 전북 익산(익옥수리조합), 강원 철원(어운수리조합)
  • 주요 투쟁지: 부평, 연해, 동진, 대정, 함흥, 김포 등 전국 각지
  • 의의: 항일 농민운동이자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평가됨

관련 기구

  • 대한수리조합연합회 (1938년 조선토지개량협회 → 1940년 조선수리조합연합회 → 1949년 대한수리조합연합회로 개칭 → 1962년 해산)

참고: 현대의 '수리조합'과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수리수리협동조합(서울 세운상가의 물건 수리 장인 협동조합)이나 한국선박수리공업협동조합(선박 수리 업체 협동조합)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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