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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 (신정왕후)

수릉(綏陵)은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의 세자였던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와 그 비(妃)인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 1808~1890)의 합장릉이다. 효명세자는 사후에 익종(翼宗), 문조(文祖)로 추존되었으며, 신정왕후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이자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양모(養母)로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다. 수릉은 대한민국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東九陵) 경내에 위치하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중 하나이다.

효명세자는 1809년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 사이에서 장자로 태어나 1812년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819년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의 딸인 신정왕후 조씨와 가례를 올렸다. 1827년부터 아버지 순조를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였으나, 1830년(순조 30) 2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당시 그 묘는 경기도 양주군 천장산(현재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懿陵) 왼쪽 언덕에 세자 무덤 형식인 원(園)으로 조성되어 '연경묘(延慶墓)'라 불렸다.

1834년 아들 헌종(憲宗)이 즉위하면서 효명세자는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고, 연경묘는 능으로 승격되어 '수릉(綏陵)'이라는 능호를 받았다. 이후 수릉은 두 차례 이장(移葬)되었다. 1846년(헌종 13) 풍수상 불길하다는 논의가 제기되어 양주 용마산 아래로 첫 번째 천릉이 이루어졌고, 1855년(철종 6) 다시 지금의 자리인 구리 동구릉 건원릉(健元陵) 좌측 언덕으로 두 번째 천릉이 이루어졌다.

1890년 신정왕후가 83세의 나이로 승하하면서 수릉에 합장되었다. 신정왕후는 당초 별도의 능호로 홍릉(洪陵)이 정해졌으나, 익종과의 합장이 결정됨에 따라 수릉이라는 능호를 함께 쓰게 되었다. 1899년(광무 3)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에 의해 익종은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신정왕후는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다시 추숭되었다.

수릉은 문조와 신정왕후가 하나의 봉분에 합장된 단릉(單陵) 형태이다. 능역에는 난간석, 양석(羊石), 호석(虎石), 곡담(曲墻),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 석마(石馬) 등의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능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刻) 등이 남아 있다. 비각에는 1890년 건립된 익종과 신정왕후의 합봉비(合封碑)와 1902년 건립된 문조익황제·신정익황후 표석이 있으며, 두 표석 모두 고종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수릉은 세자묘(世子墓)로서 출발하여 봉릉, 두 차례의 천릉, 왕후 합장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19세기 왕릉 천릉과 조선 후기 왕릉 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수릉의 석물들은 시기별로 단계적으로 추가 건립되었는데, 장명등과 문석인은 1830년, 무석인은 1846년에 제작되었으며, 합봉비도 1830년 처음 세워진 이래 두 차례 개서(改書)되어 사용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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