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카손주쿠(일본어: 松下村塾, しょうかそんじゅく)는 일본 에도 시대 말기(막부 말기)에 나가토국(長門国) 조슈번(長州藩) 하기성(萩城) 아래 마쓰모토무라(松下村, 현재의 야마구치현 하기시)에 존재했던 사설 학당(사숙)이다.
설립 및 연혁
1842년(덴포 13년), 조슈번의 무사이자 야마가류(山鹿流) 병학 사범이었던 다마키 분노신(玉木文之進)이 다다미 8첩(약 4평) 크기의 작은 교실로 사숙을 열었다. 처음에는 야마가류 병학을 가르치는 사숙이었으나, 이후 다마키 분노신의 조카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이 학숙에서 수학하였다. 1857년(안세이 4년), 요시다 쇼인이 다마키 분노신으로부터 쇼카손주쿠를 인수하여 학장으로 취임하였다.
요시다 쇼인은 신분과 계급에 관계없이 학생을 받아들였으며, 무사의 자제뿐 아니라 평민(상민)의 자제도 입학이 가능했다. 이는 당시 번립 학교인 메이린칸(明倫館)이 사족(사무라이) 신분만 입학 가능했던 것과 대비된다. 요시다 쇼인이 직접 가르친 기간은 불과 1년 남짓이었으나, 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1858년, 요시다 쇼인이 막부의 대로(大老)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를 암살하려는 계획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1859년(안세이 6년) 안세이 대옥(安政大獄)으로 에도에서 처형되었다. 이로 인해 쇼카손주쿠는 1차로 폐쇄되었다.
이후 1866년(게이오 2년)에 재개교하였고, 1871년(메이지 4년) 다마키 분노신이 교장으로 복귀하여 학교를 자신의 저택 안으로 옮겼다. 1876년(메이지 9년) 하기의 난(萩の乱)에 동문들이 연루되면서 다시 폐교되었고, 교장 다마키 분노신은 책임을 지고 할복하였다. 1880년(메이지 13년) 요시다 쇼인의 친형인 스기 민지(杉民治)가 다시 개교시켰으나, 1890년 교육칙어(教育勅語) 공표 이후 완전히 폐교되었다.
출신 인물
쇼카손주쿠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요람으로 평가된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로는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이리에 구이치(入江九一) 등 도막(倒幕) 운동의 중심 인물들과, 이후 메이지 신정부의 수뇌부가 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시나가와 야지로(品川弥二郎), 야마다 아키요시(山田顕義) 등이 있다.
문화재 지정 및 세계유산
1922년(다이쇼 11년) 10월 12일, 일본 정부에 의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하기시의 쇼인 신사(松陰神社) 경내에 막부 말기 당시의 건물이 현존하고 있다. 2015년 7월,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구성 자산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명칭의 유래
'쇼카손주쿠(松下村塾)'라는 명칭은 이 학당이 위치했던 지역의 지명인 '마쓰모토무라(松下村, 소나무 아래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송하촌숙(松下村塾)', 즉 '소나무 아래 마을의 서당'이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