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니군 (少弐氏, しょうにし)은 일본의 가마쿠라 시대부터 센고쿠 시대에 걸쳐 규슈(九州) 북부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유력한 다이묘(大名) 가문이다. 쇼니씨라고도 불린다.
기원 및 초기 역사 쇼니씨는 후지와라 북가(藤原北家)의 분가로, 후지와라노 타카이에(藤原隆家)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가문의 이름은 다자이후(太宰府)의 차관직인 '쇼니(少弐)'에 유래한다. 다자이후는 고대 일본의 규슈 지역 행정 중심지로, 쇼니씨는 이 직책을 세습하며 규슈 지역의 군사 및 행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른바 '친제이 부교(鎮西奉行)' 또는 '진제이 봉행'이라고 불리는 규슈 지역의 최고 군사 통솔권을 행사하며 오토모씨(大友氏), 시마즈씨(島津氏)와 함께 규슈 3대 유력 씨족 중 하나로 성장했다.
몽골 침략 방어 가마쿠라 시대 후기, 쇼니씨는 몽골의 일본 침략(원나라의 일본 원정, 弘安の役) 방어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쇼니 쓰네스케(少弐経資)는 규슈 방어의 최전선에서 몽골군에 맞서 싸웠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규슈 지역에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이 시기는 쇼니씨의 전성기로 평가된다.
무로마치 시대의 혼란과 세력 다툼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에 들어서면서 쇼니씨는 아시카가 막부(足利幕府)의 규슈 탄다이(九州探題) 직책을 놓고 시부카와씨(渋川氏) 등 다른 씨족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오토모씨와 시마즈씨를 비롯한 규슈 내 다른 유력 다이묘들과의 대립이 심화되었고, 가문 내에서도 내부 분열이 발생하여 세력이 점차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한때 규슈 전역에 미치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센고쿠 시대의 몰락 센고쿠 시대(戦国時代)에는 류조지씨(龍造寺氏)와 오토모씨의 압박에 시달리며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특히 류조지 타카노부(龍造寺隆信)의 세력이 급부상하면서 쇼니씨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쇼니 후유히사(少弐冬尚) 대에 이르러 류조지 타카노부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며 1559년에 사실상 다이묘로서의 지위를 잃고 멸망했다. 이후 쇼니 가문의 일부는 오토모씨나 다른 다이묘의 가신으로 명맥을 이어가기도 했으나, 독자적인 다이묘로서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영향 쇼니씨는 한때 규슈 북부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정치, 군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격동의 센고쿠 시대를 거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은 규슈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 유서 깊은 가문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