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뇌
쇠뇌(석궁, crossbow)는 활을 나무로 된 활틀(목비) 위에 고정하고, 쇠로 된 기계식 발사장치(노기)를 적용하여 일반 활보다 긴 사정거리와 강한 관통력을 갖도록 개량한 고대의 원거리 무기이다. 쇠뇌는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기원전 5세기경)부터 출현하여 후한과 삼국시대에 성행하였으며, 동시기 또는 근접한 시기에 서양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무기가 등장하였다.
쇠뇌의 개발 목적은 크게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된다.
첫째, 보병이 전차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되었다.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까지 평지 전장에서 전차는 중요한 전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보병이 이러한 전차와 대등하게 싸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관통력을 가진 원거리 무기가 필요하였다. 쇠뇌는 전차의 장갑을 관통하거나 전차의 운전자를 원거리에서 타격함으로써 전차의 전투력을 무력화하는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둘째, 북방 유목민족의 기병(기마 전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에 맞서 보병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으며, 쇠뇌는 일반 활보다 긴 사정거리와 강한 관통력을 제공함으로써 기병이 보유한 활의 사정거리 밖에서 기병을 제압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목적은 중국의 진·한 시기에 본격화되었으며, 기병의 갑옷과 투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중무장 기병의 등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셋째, 전투 효율성과 사격 정확도의 향상을 위한 기계적 개량의 목적이 있었다. 활시위에 기계식 잠금 장치(시위걸개)와 방아쇠(현도)를 적용함으로써, 사수는 활시위를 당긴 상태를 유지할 필요 없이 조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동일한 인원이 더 큰 장력을 이용한 사격을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정거리, 관통력, 명중률의 향상을 가져왔다. 기계적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순간적으로 방출하는 이 원리는 이후 총기와 같은 화약 무기로 이어지는 기술적 선례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쇠뇌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며, 낙랑 유적과 영천 용전리 무덤 등에서 청동제 발사장치가 출토된 바 있다. 조선 후기에는 화기가 주력 무기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활의 대체 또는 보조 무기로서 쇠뇌가 재조명되어 영조·정조 시기에 다양한 형태로 개발·보유되었다.
다만 쇠뇌가 최초로 개발된 정확한 연대, 단일한 발명자, 그리고 초기 설계의 구체적인 사양에 대한 상세 기록은 제한적이며, 일부 내용은 고고학적 발굴과 문헌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