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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구월 전쟁

송-대구월 전쟁은 981년 중국 북송 왕조와 베트남의 딘 왕조 및 전 레 왕조 시기의 국가인 대구월(大瞿越, Đại Cồ Việt)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기록에서는 이 전쟁의 주요 전투인 박당강 전투(白藤江之戰)를 따서 지칭하기도 한다.

배경

9세기 후반 당나라의 통제가 약화되면서 오늘날 베트남 북부 지역은 현지 호족들의 자치적 지배를 받게 되었다. 939년 응오꾸옌(吳權)이 이 지역의 중국계 절도사를 폐지하고 왕을 자칭하였으나, 그의 사후 내전이 발생하여 왕국은 열두 군벌의 영지로 분열되었다. 968년 딘보린(丁部領)이 군벌들을 통합하고 국호를 대구월(大瞿越)이라 하였다. 송나라는 딘보린에게 교지군왕(交趾郡王) 등의 칭호를 수여하며 명목상의 조공 관계를 유지하였다.

979년 10월, 내시 도틱(杜釋)이 딘보린과 그의 아들 딘리엔(丁璉)을 암살하였다. 장군 레호안(黎桓)이 당시 다섯 살이던 딘또안(丁璿)의 섭정으로 권력을 장악하였다. 송나라는 이 혼란을 틈타 후인보(侯仁寶)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대구월을 침공하려 하였고, 이에 대구월 조정은 레호안을 왕으로 추대하여 전쟁에 대비하였다.

전개

981년 초, 송나라는 육로와 해로(박당강)를 통해 두 갈래로 대구월을 침공하였다. 레호안은 송나라 함대와 박당강에서 교전하였으나 병력 열세로 후퇴하였다. 송 함대는 1,000명의 베트남 수병을 참수하고 200척의 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말라리아가 송군에 창궐하여 원정군의 20~30%가 사망하였고, 지휘관들 간의 내분이 발생하였다. 레호안은 치랑(支棱, 현 랑선 인근)에서 매복 작전을 펼쳐 송군을 저지하였고, 이 전투에서 송군 장군 두 명이 포로로 잡히고 송군의 절반이 전사하였다. 송나라의 침공은 981년 4월에 종결되었다.

결과 및 여파

전쟁에서 대구월이 승리하였다. 레호안은 포로로 잡은 송 장군들을 돌려보내고 송나라에 조공 관계 재개를 요청하였고, 송나라는 이를 수용하였다. 993년 레호안은 송나라로부터 교지군왕(交趾郡王)의 칭호를 받았고, 997년에는 남평왕(南平王)으로 승격되었다. 송나라의 위협이 줄어들자 레호안은 982년 참파(Champa)를 침공하며 남쪽으로의 영토 확장을 시작하였다. 이후 송나라와 베트남 사이의 전쟁은 1075년에 재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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