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흥진(1884 ~ 1960)은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 대악리 출생의 독립운동가이자 기독교 장로이며, 광주 숭일학교 농감(農監)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해 일제에 체포·구속, 약 2년간 옥고를 치른 뒤 석방되었다. 이후에도 전라남도 지역 교회에서 전도사와 장로로 봉사하며 기독교 복음 전파와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생애
| 구분 | 내용 |
|---|---|
| 출생 | 1884년 4월 14일, 전라남도 장성군 장안리(長安里)에서 송덕삼의 차남으로 태어남 |
| 가족 | 1905년경 김자현의 장녀 김애마와 결혼 |
| 종교 | 1911년 기독교에 입교, 1913년 미국인 선교사 타마자에게 세례받음 |
| 직업·활동 | 1915년 광주 양림동으로 이주, 숭일학교 농감 역임. 1919년 3·1운동에서 광주 만세시위 주도. 1922년 이후 담양·와우리 지역 교회에서 전도사·장로로 봉직 |
| 사망 | 1960년 9월 29일, 전라남도 담양군 양지리에서 별세(향년 75세) |
독립운동 참여
- 광주 3·1운동: 1919년 3월 10일, 광주 작은 장날에 약 천여 명이 모인 만세시위에서 숭일학교 교감으로서 학생·교인들을 이끌었다. 송흥진은 큰 태극기를 든 채 시위 선두에 서서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고, 인쇄물·홍보물 제공을 담당하였다.
- 체포·수감: 시위 진압 과정에서 체포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치안 방해 혐의로 재판을 받아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재판부는 “피고 송흥진 등은 본건 망동의 수괴(首魁)”라 평가하였다.
전후 활동 및 공훈
- 석방 후에도 담양·와우리 지역에서 전도사·장로로 활동하며 교회 건축·지역 개발에 기여하였다.
- 1977년 대통령표창(애족장)을 수여받아 독립운동 공훈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으며, 1990년 건국훈장을 추서받았다.
평가 및 의의
송흥진은 광주 지역 기독교 계열 학교인 숭일학교를 중심으로 3·1운동을 조직·주도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교육자·목회자로서의 역할과 독립운동가로서의 투쟁이 결합된 그의 행적은 전라남도 남부 지역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사례를 제공한다.
※ 위 내용은 한국 위키백과 및 공신력 있는 사료(공훈전자사료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등)를 기반으로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