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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신 초상

송언신 초상(宋言愼 肖像)은 조선 시대 문신 송언신(宋言愼, 1542~1612)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로, 대한민국 보물 제941-2호로 지정된 국가유산이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4년 5월 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송언신은 명종·선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이조판서와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관찰사로 재임하며 선조와 군신 간에 주고받은 친필 서찰이 '선조어서사 송언신 밀찰첩'으로 함께 전한다.

초상화의 형식은 오사모(烏紗帽)에 단령(團領)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全身坐像)이다. 그림 속 인물은 왼편을 향해 약간 비껴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가슴에는 모란과 운안(雲雁) 문양의 흉배(胸背)가 부착되어 있고 삽금대(鈒金帶)를 두르고 있다. 이는 1603년부터 1614년 사이에 송언신이 정이품(正二品)의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지낸 당시의 품계와 일치한다. 바닥에는 채전(彩氈)이 깔려 있고 족좌대(足座臺) 위에는 팔자형으로 벌린 흑피혜(黑皮鞋)가 표현되어 있다.

안면은 좌안 7분면(左顔七分面), 몸체는 8분면 정도로 그려졌으며, 공수(拱手) 자세를 취한 단령 사이로 흰 창의(唱衣)의 소매가 드러난다. 얼굴 표현에는 음영법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법령(法令)과 협(頰), 귀의 이문(耳紋) 부위에만 약간의 음영이 가해졌다. 수염은 흑색 선 위에 백색 선을 올려 곱슬거리게 표현하였다. 옷주름은 몇 개의 선만으로 간단하고 균일하게 처리되었다.

그림에는 세 곳에 글이 적혀 있다. 왼쪽 채전 위의 글은 광해군 즉위 후 관직에서 물러난 송언신이 1611년(신해년) 광주(廣州) 방암(放菴)에 은거하면서 직접 써 넣은 칠언시(七言詩)이다. 오른쪽 아래에는 그림이 그려진 내력이 기록되어 있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송언신을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책록하려 했으나 스스로 사양하여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정공신에게만 해당하는 공신초상이 이미 제작되어 전해졌다는 내용이다. 오른쪽 위에는 '1604년 선무공신'이라고 적혀 있으나, 이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정확한 명칭이다.

초상화의 제작 시기는 17세기 초로 추정되며, 당시 제작된 선무·호성·청난 공신초상과 동일한 양식을 보인다. 오사모는 높이가 낮고 윗부분이 평평하며 날개는 넓고 끝이 둥글다. 단령에는 구름 무늬가 평면적으로 연속 묘사되었고, 의자 뒤로 단령에 덧댄 무(武)가 삼각형 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다. 이러한 표현 형식은 정사공신상(靖社功臣像)보다 앞선 시기의 특징을 보여준다. 다만 사모의 채색에 있어 앞쪽은 흑색으로, 뒤쪽 솟은 부분은 진회색으로 처리된 점은 후대 복원 과정에서 가채(加彩)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초상화는 17세기 초 조선 시대 공신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조선 중기 초상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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