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 초상(宋時烈 肖像)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총칭한다. 송시열은 본관 은진, 자 영보, 호 우암으로, 이이와 김장생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적전이자 노론의 영수였으며 이조판서와 좌의정을 역임한 인물이다.
유형 및 지정 현황
송시열의 초상화는 여러 점이 전해지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두 점은 다음과 같다.
(1) 국보 제239호 - 송시열 초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87년 12월 26일 대한민국 국보 제239호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반신좌상(半身坐像)이며, 크기는 세로 89.7cm, 가로 67.3cm(또는 67.6cm)이다. 머리에 검은색 복건(幞巾)을 쓰고 유학자의 평상복인 유복(儒服) 차림을 하고 있으며, 오른쪽을 바라보는 좌안칠분상(左顔七分像)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작품 오른쪽 상단에는 송시열이 45세(1651년) 때 쓴 제시(題詩)가 있으나, 그림 속 인물은 깊은 주름과 하얗게 센 수염의 노년기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제시의 시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이 초상화가 송시열 사후에 생시의 진본(眞本)을 바탕으로 다시 그려진 이모본(移模本)일 가능성을 시사하며, 상단의 어제찬문(御製撰文)이 쓰여진 정조 2년(1778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얼굴의 깊게 패인 주름과 굵은 갈색 필선, 강한 눈매, 붉은 입술 등을 통해 송시열의 강직하고 완고한 성품을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2) 보물 - 송시열 초상 (제천의병전시관 소장, 황강영당본) 원래 안동 권씨 문순공파 종중의 황강영당(黃江影堂)에 봉안되어 '황강영당본'으로 불렸다. 201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6월 보물로 승격되었다. 크기는 세로 92.5cm, 가로 62cm로, 비단 바탕에 채색한 반신상이다. 화면 상단에 '우암 송선생 칠십사세진(尤庵宋先生七十四歲眞)'이라는 제기(題記)가 있어 1680년(숙종 6) 경에 송시열의 74세 때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김창협(金昌協)의 찬문(贊文)이, 그 아래에는 동생 김창업(金昌業)이 그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왼쪽 위에는 권상하(權尙夏)의 찬문이 있다. 다만 이 초상화는 김창업이 그린 원본을 후대에 다시 그린 것일 가능성이 크다. 사방건(四方巾)을 쓰고 심의(深衣)를 입은 모습으로, 힘 있고 탄력 있는 필선과 차분한 채색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연원 및 배경
『우암년보(尤庵年譜)』에 따르면 송시열 생시(生時)에 제작된 초상화는 한시각(韓時覺)·김진규(金鎭圭)·김창업(金昌業)이 각각 그린 3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송시열 사후에는 그를 추모하고 받드는 영당과 서원이 전국 20여 소에 건립되면서 많은 이모본이 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전해지는 초상화는 총 5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초상화는 모두 좌안칠분상의 구도를 공유하며, 후대 송시열 초상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의의
송시열 초상은 조선 후기 초상화가 추구한 사실성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초상화 주인공의 역사적 위상과 더불어 회화적 완성도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굵고 탄력 있는 필선, 깊이 표현된 골격과 주름, 차분한 채색 등은 조선 후기 초상화의 전형적인 기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