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조선의용군에 편입되어 팔로군(八路軍)과 함께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김두봉, 무정 등과 함께 연안파(延安派)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광복 후 귀국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으며, 초기 북한 정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당력사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며 이론가이자 역사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북한의 역사 서술과 당의 이념적 토대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김일성 유일체제 구축 과정에서 연안파에 대한 숙청이 단행되면서, 송남헌 또한 정치적으로 배제되었다. 다른 연안파 인사들이 대거 처형되거나 숙청된 것과 달리, 송남헌은 당에서 제명되거나 한직으로 밀려났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이후 역사가로서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1980년대 후반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면서 복권되어 다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특히 그의 학술적 업적과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높이 평가받아 당력사연구소 부소장, 조선인민군 역사연구소 소장 등을 다시 맡으며 명예를 회복했다.
1996년 사망했으며, 그의 생애는 북한 권력 투쟁의 격변 속에서 한 독립운동가이자 지식인이 겪은 파란만장한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는 연안파 숙청에서 살아남아 후에 복권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로, 북한의 정치적 변화와 지식인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다.